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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ve'를 본 것만으로도 EIDF에 고맙다

다큐후비기

by hangil 2010. 8. 3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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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밤 채널을 돌리다 EBS에 꽂혔다.
나의 시선을 잡은 프로그램은 'The Cov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다. 한국에는 'The Cove-슬픈 돌고래의 진실'로 이미 알려져있던 다큐멘터리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다큐멘터리 자체보다는 'The Cove'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 각종 뉴스에 보도되면서 'The Cove'도 알려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EBS에서는 매년 'EBS국제다큐영화제(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이하 EIDF)를 개최하는데 올해로 7회를 맞은 EIDF는 '우리의 시선 너머'라는 주제로 지난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 동안 열렸다.

EIDF의 본행사, 즉 EIDF 경쟁작과 초청작의 상영은 주로 예술영화전용관(또는 독립영화전용관)인 '아트하우스 모모'와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에서 진행됐는데, EIDF가 다른 영화제와 궁극적인 차별성이 있는 것은 바로 영화제 기간 동안 극장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을 EBS 채널을 통해서도 방송한다는 점이다.


지난 토요일 밤 EBS에서 EIDF '해외 수상작 특별전'에 초대된 'The Cove'를 방송했고, 채널을 돌리던 중 이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것이다. EIDF가 진행중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전에도 채널을 돌리다 다른 다큐멘터리들을 잠깐씩 보게 됐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까지 시선을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The Cove'는 그 어떤 사정을 덮어두고 볼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였다. 보자마자 꽂혔고, 끝까지 시선을 놓칠 수 없었다.

'The Cove'의 내용을 글로 소개하는 건 간단하다.

일본의 타이지 지역에서 매년 9월 벌어지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돌고래 사냥'(아니 사냥이라기보다는 '학살'이다)을 고발하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주된 내용이다.

수천년 동안 돌고래가 이동해온 바다에 인접한 타이지에서는 소리에 민감한 돌고래의 특성을 이용해 돌고래가 몰려올때면 시끄러운 소음으로 '소리의 벽'을 만들어 돌고래를 해안으로 몰아넣고 어망을 쳐서 가둬놓는다.

기진맥진해 있는 돌고래 가운데 상품성 있는 돌고래는 산채로 잡아 전세계의 수족관에 팔고, 상품성이 없는 돌고래는 조용하고 은밀하고 자그마한 만에 몰아넣고 학살한다. 조그만 보트 여러 대에 올라탄 사람들은 해안에 내몰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버둥거리는 돌고래들을 인정사정없이 작살로 찔러 죽이고, 바다는 금방 핏빛으로 온통 붉게 물든다.

매년 반복되는 일본 타이지의 돌고래 학살


이렇게 타이지의 조용한 해안에서 이뤄지는 학살로 죽어나가는 돌고래가 매년 2만3천여마리. 일본은 산채로 내다판 돌고래 외에 학살한 돌고래는 식용으로 사용하며 심지어 학교급식에도 이용한다고 한다.

'The Cove'의 제작자들은 바로 이 현장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긴박하게 화면에 담아냈고, 전세계에 이 참상을 고발했다.


글로 'The Cove'의 내용을 소개한 것으로도 뭔가를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The Cove'는 직접 봐야 적나라하게 느끼고 알게 된다. 보여지는 영상과 소리에 차마 벌어진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의 경악을 느끼게 될 것이고,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 힘들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고발하는 화면만으로는 'The Cove'가 다루는 내용은 충격적인 '뉴스'에 그칠 것이다. 'The Cove'는 타이지에서 벌어지는 돌고래 학살을 화면에 담기 위해 수중 촬영, 녹음 전문가, 특수 효과 아티스트, 최고 수준의 다이버들로 팀을 구성해 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긴박하고 치밀한 작전을 전개한다.

이를 통해 타이지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야쿠자 조직까지 연계된 돌고래 학살자들의 눈을 피해 오랜 세월, 하지만 은밀하게 타이지 지역에서 자행되어 온 돌고래 학살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오랜 세월 돌고래 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하면서 생긴 수은중독까지 밝혀냄으로써 단순히 돌고래를 학살하는 것에 대한 고발뿐만 아니라 돌고래 고기를 식용하는 사람에 대한 경종도 울렸다.

그리고 더욱 'The Cove' 제작자들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이들은 자신들이 포착한 충격적인 장면으로 단순히 센세이셔널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행동에도 나섰다는 것이다.

국제포경위원회(IWC,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는 상업적 포경을 금지하고 있지만 돌고래는 '작은 고래'로 분류되어 포획이 허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은 포경을 금지하는 규제를 없애기 위해 갖은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일본의 경제력을 앞세워 가난한 나라의 투표권을 매수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The Cove'를 보면 일본은 IWC 회의에서 "IWC는 본질적으로 타이지와 같이 영세한 포경 공동체를 말살하고 있다"며 규제를 풀자고 주장하는데, 이에 작은 나라들은 '일본 어부들의 곤경에 동정심도 없냐'는 주장까지 펼치며 일본을 지지한다. 'The Cove'에 의하면 이들 나라가 일본을 지지하는 것은 일본의 '경제적 원조'때문이다.

'The Cove'를 보며 돌고래 학살로 인해 바다가 핏빛으로 물든 장면도 충격적이고 평생 인상에 남을 장면이지만, 나에게 그보다 더 인상 깊고 한편으로는 통쾌하기까지 한 장면은, IWC 회의에서 일본 대표가 '일본의 고래 사냥법은 나날이 개선되어 왔다'며 '고래의 숨이 끊어지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반수 이상이 즉사한다, 일본은 자부심을 느낀다'고 주장하면서 포경을 더욱 넓게 허용하자고 말하는 바로 그 현장에 'The Cove'의 제작자 중 한명인 릭 오배리(전직 돌고래 조련사였다, 포경 금지 운동을 펼치는 사람)가 타이지의 돌고래 학살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를 가슴에 매고 들어가 회의장에서 참상을 직접 폭로하는 장면이다.


릭이 돌고래 학살 영상을 가슴에 안고 회의장 곳곳을 돌며 회의 참석자들 눈앞에서 보여주며 일본 대표의 말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위선인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고발하는 장면은 'The Cove'의 제작자들이 그저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자(디렉터 또는 프로듀서 또는 저널리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액티비스트로서 충분한 역할을 함을 보여줬다. 산업화된 무분별한 포경으로 개체수가 줄어드는 고래를 보호하려는 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것인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으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The Cove'의 내용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이쯤 하자. 나는 'The Cove'를 볼 수 있게 해준 EBS EIDF에 고맙다. 비록 다른 작품들을 눈여겨 보지는 못했지만 'The Cove' 한편만으로 '우리의 시선 너머' 다른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The Cove' 한편을 국내에 소개하고 지상파 방송을 통해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EIDF의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영화제를 7회째 하고 있는 EBS의 존재 이유 또한 평가할만 하다.


MB정부가 출범한 뒤 한때 EBS 사장을 공모하면서 EBS를 수능방송으로만 치부하는 이가 사장이 될뻔한 적이 있다. 그리고 EBS를 수능방송으로 성격규정하려는 시도 또한 그치지 않는다. 물론 공교육을 보완하는 역할도 해야겠지만 교육방송으로서의 EBS의 역할은 수능 동영상 강의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은 없어진 '똘레랑스', '미디어바로보기' 또한 교육방송이 해야 할 역할이었고, '지식채널e'는 여전히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우리 대중음악을 풍부하게 하고 그 토양을 다져주는 '스페이스 공감' 역시 얼마든지 교육방송이 할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 너머 견문을 넓혀주는 EIDF 역시 교육방송 EBS가 해야 할 역할이다.

우연찮게 'The Cove'를 보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기회가 되면 'The Cove'를 꼭 보길 바란다.
(참고 : 다음 무비 코너에 소개된
 'The Cove'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5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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