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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보고 드라마 '아줌마' 떠오른 이유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10. 11. 1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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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목 밤 시간대 시청패턴이 좀 혼란스러웠다.
<도망자 플랜비>가 방송을 시작할 무렵에는 KBS2TV를 보다가, <도망자>가 워낙 도망만 다니느라 집중을 할 수 없게 해 <대물>이 시작한 뒤에는 SBS를 보다가, <대물> 또한 서혜림이 국회의원이 된 뒤부터 애써 긴장감을 높이려 하지만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마침 속도감이 붙어 재미있어진 <도망자>를 봤더니. 좀처럼 <대물>이고 <도망자>고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둘 다 재밌긴 한데, 뭔가 부족한, 그래서 꼭 하나에 집중하기 힘든 시청자로서의 난감함...

이 무렵 MBC에서는 마침 <즐거운 나의 집>을 시작했다. 

김혜수를 TV에서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 일단 봤다. 그런데 처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신혜와 신성우의 베드신 장면이 영 어색하고, 물론 불륜 관계라면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이들의 다소 노골적인 애정씬(황신혜가 신성우의 윗옷을 벗기고 애무를 한다든지)이 드라마에서 죽을 쑤고 있는 MBC의 노골적인 시청률 전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즐거운 나의 집'의 한 장면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즐거운 나의 집>은 새롭다.
처음엔 그저 중년 남녀의 삼각 관계 불륜을 다루는 멜로물처럼 보였지만, 회를 거듭하며 우리 사회의 세태를 반영(물론 전반적인 세태는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중상류층 이상이 해당될테고, 교수집단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는 부류의 세태에 한정된다)하는 볼거리가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미스터리까지 더해졌다.

통속성과 현실성, 그리고 미스터리까지 한 드라마에 담자면 여간해서는 균형을 맞추기 힘들테지만 <즐거운 나의 집>은 이를 멋지게 조화시켜내고 있다. 거기다 연기자들의, 특히 김혜수의 열연까지 더해지며 완성도 높은 드라마의 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의 한장면


비록 <대물>에 밀려 시청률은 한자리수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방송3사에서 방송되고 있는 수목드라마 중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드라마는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이다. 그렇다고 <대물>과 <도망자>가 재미없는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개인적으로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앞으로 <즐거운 나의 집>이 수목드라마의 강자로 떠오르게 될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전망한다. <즐거운 나의 집>은 시청자들이 충분히 좋아할만한 코드를 가진 드라마이고, 한번 보면 빠져나오기 힘든 이야기 전개로 나아가고 있으며 김혜수의 연기 등이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시청률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뭐.. 아니면 말고.. 이긴 하지만...)


그래서 여튼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즐거운 나의 집>을 집중해서 지켜보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보면서 알게 되겠지만,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역시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어 한 번 짚어보려고 한다.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을 보면서 지난 2000년에서 2001년에 걸쳐 21세기 초입에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 <아줌마>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당시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다뤄진 '아줌마'의 전형을 벗어나 새로운 '아줌마' 상을 선보였던 <아줌마>, 오삼숙을 열연한 원미경을 통해 동시대 아줌마들로부터 동변상련을 느끼게 하며 당찬 아줌마의 모습을 현실적이고도 새롭게 보여줬던 <아줌마>, 장진구 강석우를 통해 지식인 사회의 허위의식과 위선을 시원하게 꼬집었던 바로 그 <아줌마>가 <즐거운 나의 집>을 보면서 오버랩된다.

드라마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아줌마>가 진지할 때 진지했지만 전체적으로 밝고 명랑한, 그리고 코믹적인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였다면 <즐거운 나의 집>은 제목과 달리 드라마의 전반적인 색채가 어둡다고 할 만 하다. 미스터리 요소까지 가미됐으니 더욱 그렇다.

장진구(강석우) 떠올리게 하는 이상현(신성우)

그럼에도 <즐거운 나의 집>을 보면서 <아줌마>가 연상되는 것은 무엇보다 장진구를 떠올리게 하는 이상현(신성우)의 캐릭터이고, '진서(김혜수)-상현-윤희(황신혜)'로 얽힌 이들의 삼각 관계가 <아줌마>에서 '삼숙-진구-지원(심혜진)'과 대단히 닮아 있는 것에 기인한다.

오랜 세월 희생을 감수한 아내의 내조 덕에 대학 교수가 된 장진구(물론 '돈'이 결정적이었기 하지만)가 정작 교수가 되어서는 아내를 내팽개치고 플라토닉 사랑을 한다며 지원과의 관계를 진전시켜나가는 모습과 대학 강사로 현실에 비분강개하면서도 정작 이중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벗지 못하며 아내 진서보다는 윤희를 더 챙기는 상현의 모습은 그대로 닮아 있다.

그리고 <아줌마>가 강진구와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지식인 사회 전반을 꼬집고 삼숙과 가족들을 통해 가부장 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다면 <즐거운 나의 집>은 이상현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파벌 다툼, 매관매직, 허위의식 등 모략이 판을 치는 대학 사회 교수 집단의 이중성과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어제 방송 중 인상깊었던 부분은 진서와 상현이 서로가 쓴 책을 읽으며 서로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장면이었는데, 현실과는 괴리된 지식인 사회의 전형적인 이중성을 보는 것 같아 매우 흥미로웠다.

삼숙과 진서는?

물론 오삼숙과 진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삼숙은 평생 집에만 있던 천상 아줌마였다면, 진서는 정신과병원 원장으로 최고 엘리트로 등장한다. 그리고 <아줌마>는 삼숙이 찌질한 남편에 분노하며 새삼 자아를 찾아 세상에 당당히 부딪혀나가는 과정을 핵심줄기로 삼았다면, <즐거운 나의 집>은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찌질한 남편에 분노해 가정과 자식을 지키려는 진서의 분투기를 담고 있다.

비록 처지와 조건은 전혀 다르지만 10년의 세월의 거슬러 TV에서 명연기를 펼치고 있는 중량감있는 여배우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즐겁다. 삼숙의 연기 못지 않게, 연적을 둔 여성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거기다 미스터리를 파헤쳐 가는 끈질긴 집념을 가진 모습까지 열연을 펼치고 있는 김혜수의 모습은 앞으로 <즐거운 나의 집>을 더욱 기대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즐거운 나의 집>이 <아줌마>가 이룬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건 섣부르다. 삼숙이 '아줌마'를 대변했던 데 비해 진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줌마>가 드라마 전반에서 한국 사회를 유쾌상쾌통쾌 그리고 때론 가슴 아프게 비틀었다면 <즐거운 나의 집>에서 그 정도를 기대하긴 힘들다.

모든 드라마가 <아줌마> 같은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는 건 아니다. <즐거운 나의 집>이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묘하게 <아줌마>를 연상케 하는 드라마를 만났는데, 그러고보니 '지난 10년 동안 과연 <아줌마> 같은 드라마가 또 있었던가?' 생각했더니 딱히 떠오르는 드라마가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줌마> 같은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일부 캐릭터를 닮은 게 아니라 <아줌마>의 미덕을 이을 드라마를 다시 또 만나고 싶은 데서 오는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1년에 한편 정도는 그런 드라마를 만나면 좋지 않을까?

어쨌거나 <즐거운 나의 집>이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말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 전개로 혼란스러웠던 수목 드라마 시청 패턴을 정리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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