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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민중에게 밀려난 오세훈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11. 8. 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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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의 운명을 가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D-1, 즉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오늘 정도에도 적어도 조중동 1면에서는 주민투표 관련 이슈가 깔려줘야 했다

그것이 오세훈에 편향된 내용이든, 아니면 주민투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든, 일단은 서울시민은 물론 전국민적 관심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묶어뒀어야 했다. 그 관심이 투표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계산하기 힘들지만 관심이 없는 것보다는 관심이 높은 것이, 그것도 뜨거울 정도로 높은 것이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손해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 일요일 오전 오세훈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며 서울시민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모습이 조중동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 그런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오세훈의 운명은, 그리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작 투표일 D-1인 오늘 아침에는 조중동을 포함한 신문 1면의 자리를 내어줘야 했다. 바로 리비아 민중에게, 그리고 '쫓겨난 카다피'에게.

 
오세훈의 운명을 가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불과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와, 곧 있음 선거운동도 할 수 없는 D-1 저녁 방송3사 메인뉴스프로그램에서는 적어도 톱을 주민투표 관련 뉴스를 배치해야 했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지 간에. 오세훈으로서는 주민투표 얘기가, 무상급식이란 단어가 다른 뉴스보다 더 중요하게 TV에서 다뤄지는 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오세훈 얼굴이라도 톱뉴스 정도에서 등장해주는 게 적어도 오세훈 자신에게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표시간을 불과 몇 시간 앞둔 8월 23일 방송3사 메인뉴스프로그램 가운데 MBC 뉴스데스크를 제외한 KBS와 SBS는 오세훈과 주민투표를 뒤로 미루고 리비아 민중들의 소식을 전했다. 

8월 23일 KBS '뉴스9' 톱뉴스

8월 23일 SBS '8뉴스' 톱뉴스

 
솔직히, 하루 전인 8월 22일 방송3사 메인뉴스의 톱도 리비아 시민군이 트리폴리로 진격했음을 알렸기때문에, 투표 시간을 불과 몇 시간 앞둔 D-1 저녁 메인뉴스프로그램에서는 십중팔구 주민투표 얘기가 톱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KBS와 MBC에서는 반드시 그럴거라 여겼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의외로' KBS가 기대를 저버렸다. 귀뚜라미 회장 관련 보도까지 나오지 못했던 KBS가 말이다. 

예측컨대 카다피를 몰아낸 리비아 민중들은 아마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일요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기대했던 투표율 상승을 원점으로 되돌렸을 것이다.

8월 22일 조선일보 1면. TV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오세훈의 눈물을 기어코 확인시켜줬다.


 
(즐겨듣는 '나는 꼼수다'에 대한 오마쥬를 바치자면... 나꼼수가 호외까지 제작해 오세훈의 꼼수를 폭로해 높아지려던 투표율을 내려앉혔던 것까지 계산하면 오세훈은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기 전보다 더 투표율이 갉아먹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과거 선거때면 이른바 '북풍'이 불었다. 의도된 것도 있었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시기가 조절된 것도 있었다. 

그에 빗대자면 이번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는 리비아발 '중동풍'이 불었다고나 할까? 의도된 것이 아닐뿐더러 물론 그 바람 자체가 대세를 흔들 정도는 결코 아니다. 이미 대세는 정해져 있다.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눈물을 쥐어짜고, 무릎까지 꿇는 '쇼'를 보여줬음에도 그의 자그마한 기대, 즉 그에게 편향된 언론매체의 지원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됐으니 인생이 가련하다 할까?

오늘 아침 서울 시내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 깔린 무가지'들'의 표지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홍보광고로 도배됐다. 그걸 보며 '저기 들어간 돈도 182억원에 포함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서울시와 오세훈의 행태는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준을 넘어갔으니 이 정도는 손가락으로 꼽자면 한도 없을 것이다. 

8월 23일 아침 서울에 깔린 무가지 표지(사진 출처 : 트위터 @DLPKorea)

 
다만 갈데까지 간 막가파 서울시장은 돈으로 움직이는 것 외 이미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것 같아 오세훈이 더욱 측은해졌다. 

하지만 주민투표가 끝나고 아마도 오세훈이 서울시장에서 물러나야 할 때, 반드시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모든 일들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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