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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빅리그>, 1억 건 독한 개그 우려된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11. 9. 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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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채널 tvN이 9월 17일 첫회를 시작으로 새로운 개그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를 방송할 예정이다. <코미디 빅리그>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얼마전 '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몇 가지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먼저, 출연자들이 몇명씩 팀을 꾸려 이른바 '리그제'로 경연을 펼친다는 점인데, 방청객들로부터 매번 경연을 점수로 평가받아 10번의 경연을 마친 뒤 누적 점수가 가장 높은 1등에겐 1억원의 상금을 준다(2등은 5천만원, 3등은 2천만원이다)는 것이 특히 관심을 받고 있다. 방청객들로 평가를 받고 등수를 매긴다는 점에서 개그판 '나는 가수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또 주목을 받는 것은 과거 <개그콘서트>와 <웃찾사>, <개그야> 등 지상파 방송3사의 개그프로그램에서 활동하던 내노라하는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케이블 오락채널인 tvN의 <코미디 빅리그>에 한데 모여 자신들의 끼와 재능을 펼친다는 점이다.


모두 11개 팀이 등장하는 <코미디 빅리그>에는 박준형·정종철·오지헌·윤석주의 '갈갈스', 유세윤·장동민·유상무의 '옹달샘', 김미려·안영미·정주리의 '아메리카노', 전환규·이국주의 '꽃등심', 김형인·윤택·조우용·이수한의 '비포애프터', 이상준·예제형·문규박의 '아3인', 박휘순·양세형·김기욱·윤성호의 '4G', 이재형·한현민·정진욱의 '졸탄', 변기수·정삼식·이강복·김재우의 '개종자', 이재훈·김인석·홍경준·문석희의 '개통령' 등 과거 지상파 3사에서 날고 기던(물론 이름이 낯선 사람도 없는 건 아니지만) 개그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여기에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이라는 진나이 토노모리를 중심으로 꾸려진 '요시모토'라는 팀도 출전한다.

출연진 구성만으로도 일단 화제를 얻기에 충분한 것이다.

더구나 <개콘> 연출자로 유명한 김석현 PD가 KBS에서 tvN으로 이적한 뒤 만드는 프로그램이 바로 <코미디 빅리그>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역시 개콘에서 활동한 유명 코미디작가 장덕균도 합류했다)

이런 몇 가지 만으로도 <코미디 빅리그>에 대한 관심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고, 이 프로그램이 줄 '웃음' 또한 이미 보장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지상파 3사 가운데 <개콘>만이 현존하는 레전드급의 명성을 유지하며 여전히 화제를 모으고 있을 뿐이지만, 과거 한 때 특히 2004년을 전후한 2~3년은 그야말로 방송3사의 개그프로그램이 '개그 삼국지'를 방불케하는 경쟁을 펼치며 전성시대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코미디 빅리그>에는 바로 그때 방송3사에서 개그프로그램의 인기를 이끌었던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모였다. 이미 검증된 연기자들이 이미 검증된 제작진과 함께 경쟁을, 그것도 1억원의 상금을 걸고 펼치니 '아마도 분명히' 재미가 있고 웃음을 줄 것이다.

그리고 개콘 외에는(최근 MBC <웃고 또 웃고>가 '나가수' 출연 가수들에 대한 모창과 패러디로 약간 활기를 띠고 있지만)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설 수 있는 방송 공간 자체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코미디 빅리그>가 생긴 것 자체도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코미디 빅리그>가 내세우고 이런 점에서 기대와 함께 우려를 가지게 된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 왜 그럴까?

먼저 <코미디 빅리그>의 포맷을 보자.

방청객을 상대로 한 공개개그프로그램은 이미 닳고 닳은 포맷으로 '웃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청중만 있다면' 개그프로그램으로서 가장 안전한 포맷이기도 하다. <코미디 빅리그>는 여기에 점수를 매기는 경쟁과 경쟁의 댓가로 상금 제도를 도입했다.

즉석에서 방청객으로부터 점수를 평가받는다는 것이 개그프로그램으로서는 새롭기는 하지만 사실 공개 개그프로그램에서의 경쟁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개콘을 비롯한 공개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기자들은 무대에 자신의 코너를 올리기 위해 피 말리는 경쟁을 했고, 무대에 올린 뒤에는 즉석에서 이뤄지는 방청객들의 리액션을 통해 바로바로 평가를 받으며 다른 코너와 비교당했고, 방송이 나간 뒤에는 시청률과 인터넷 댓글을 통해 또 평가받고 비교당해왔다.

<코미디 빅리그>에서는 이전 공개 개그프로그램들이 비교적 긴 기간(아이디어 기획에서 방송 이후까지) 동안 했던 경쟁을 한방에 압축적으로 끝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경쟁을 해야 하는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받을 심리적 압박이 엄청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장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토로하는 심리적 압박을 떠올려보라. 감동을 줘야 하는 가수들에 비해 '웃음'을 줘야 하는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더 여유로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의 더 압박이 클 것이다.

<KBS스페셜> '개그전쟁-웃겨야 산다'의 한 장면


"공개코미디가 재미없는 아이템은 빨리 없어지고 새로운 게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재미없는 개그맨은 바로 교체된다는 것을 말한다. 못 웃기면 내려와야 된다."(정종철)

"항상 심판을 받으러 가는 느낌이기 때문에 떨린다. 안 웃고 썰렁하다 싶으면 땀이 흐르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게 된다."(박성호)

과거 <KBS스페셜>에서 개그맨들이 토로한 어려움이다. 어떤 이는 "목이라도 매고 싶은 압박감을 느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최양락은 공개코미디에 대해 "쉽게 얘기해서 요즘 개그프로는 젊은 개그맨들이 '누가 누가 더 잘 웃기나'를 겨루는 웃기기 자랑대회"라며 "'자 여러분들, 지금부터 이 사람이 웃길 거 에요' 이렇게 쌈을 시키면 그게 참 얼마나 어려운 무대가 되겠냐?"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코미디 빅리그>는 돈과 점수를 걸고 한층 강화된 경쟁을 펼치니 그 무대가 얼마나 어렵고, 거기서 받을 압박이 얼마나 클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짠 코너를 무대에 올리고, 방송에 내보내야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은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의 현실이자 숙명일뿐 개그프로그램의 본령은 아니다. 개콘과 비교하자면 개콘의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은 자신의 코너를 무대에 올리지 못해서 혹은 방송에 내보내지 못해서 혹은 반응이 신통찮아서 남몰래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렸다면, 그래서 방송에서는 오로지 '웃음'만을 전했다면, <코미디 빅리그>는 아마도 '나가수'처럼 경쟁의 이면에서 괴로워하는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의 심리와 혹은 눈물, 그리고 결과로 인한 상처와 아픔까지 함께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과연 개그프로그램의 본령일까? 
무엇보다 그렇게 극심한 경쟁을 해야만 웃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또 하나, <코미디 빅리그>의 포맷과 관련해 우려되는 것은 매번 점수를 매기고 등수를 매기는 것이 과연 코미디에 어울리는 경쟁인지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또 한 번 '나가수'와 비교하자면 '노래'와 '개그'는 다르다. 노래는 3~5분의 한곡에 완결성을 부여할 수 있고, 그 한 곡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또 다른 한 곡으로 또 새롭게 평가할 수 있지만, 개그 코너는 그렇지 않다.

물론 5분 내외의 개그 코너 역시 한 회에 하나의 이야기를 담기는 한다. 하지만 하나의 코너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3~4회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 코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웃음의 맥락, 구성이 어느 정도는 눈과 귀에 익어야 그 코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다못해 연기자가 '유행어'를 유행시키려해도 몇회는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미디 빅리그>는 매번 점수와 등수를 매긴다고 한다. 점수가 높게 나오는 팀이야 당장 상관없겠지만, 점수가 낮고 별다른 방청객의 리액션이 없는 팀은 전혀 다른 새로운 코너를 준비해야겠다는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아마도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2번, 3번은 봐줘야 웃음의 맥을 짚고 코너의 묘미를 찾을 수 있을 코너가 일회용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훨씬 '독한' 내용과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그게 어쩌다 높은 점수를 받게 되면 다른 팀은 더 독한 걸로 경쟁하는 그런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지상파에서 날고 기던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1억원이 걸린 최종 우승을 향해  독한 개그 경쟁을 펼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물론 웃기기야 할 거다. 재미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미 실력이 검증된 개그맨(과 개그우먼)을 한 데 긁어모아 할 수 있는 포맷이 기껏 1억 상금을 건 경연이라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이왕 하기로 했으니, 한가지만 조언하자면 너나없이 개콘을 따라하다 지금은 원조만 남아 있는 이유를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스스로 잘 짚어보면 좋겠다. 그것이 꼭 그런 판을 만든 방송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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