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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빛과 그림자' 속 어딘가 박근혜가 있다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12. 1. 2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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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시대배경은 1970년대다.

즉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시절이다.


'빛과 그림자'는 그 시절의 연예계를 중심으로 주인공 강기태의 복수와 그가 연예계의 핵심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야기의 큰 뼈대로 하고 있다.

거기에 강기태와 이정혜, 유채영의 삼각관계 로맨스를 붙이고, 연예계와 정치권력의 유착(이라기보다는 연예계를 손아귀에 넣어 대중을 길들이고 이권을 차지하려는 정치권력의 모습)을 입혀 재밋거리와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빛과 그림자'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이른바 '딴따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가면서도,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70년대 그 암울했던 시대상황을 '나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MBC가 MB氏가 된지 오래고, 뉴스는 이미 관제방송의 그것이 된지 오래라 내부에서조차 곪아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가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아버지의 시대를 말이다.


강기태의 아버지가 정권의 용공조작에 희생양이 되어 고문 과정에서 죽었던 일이나,/ 걸핏하면 중앙정보부 요원이 등장해 강기태와 빛나라 쇼단의 앞길을 훼방놓는 것이나, /젊은 처자들을 골라 '각하(원조 가카)'에게 진상하는 일을 담당하던 '채홍사'가 다뤄진 것이나, /장철환 실장(경호실장인지, 비서실장인지 뭔 실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장 찔짱님)이 조명국을 앞세워 영화계를 접수하려는 것이나, /장철환이 '공화당 국회의원 후보'로 선거를 뛰면서 노골적인 금권·관권선거를 펼치는 모습 모두, 드라마 속 가공의 일이나, 그 시절 실제로 벌어졌거나, 벌어졌음직한 일들이다.

시대극을 표방하는 TV 드라마가 정치권력의 어두운 면을, 그것도 현실 정치세력(그 중에서도 집권당이자, 차기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조중동 등 극우세력들이 이른바 '좌파정권'이라 몰아붙였던 참여정부 시절에도 '서울1945' 같은 50여년 전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조차 규탄의 대상이 되거나, 소송의 대상이 되거나, 정치공세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빛과 그림자'가 다루고 있는 유신 시절의 모습은 꽤나 의미있게 다가온다. 비록 MB정권 말기라고는 하나, 어쨌거나 아직도 MBC가 장악되어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위원장에게 결코 편할 수 없는, 아니 불편한 이야기들을 '빛과 그림자'는 피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빛과 그림자'는 2012년 대선을 코 앞에 눈 시점에서 충분히 회자될만하고 주목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드라마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KBS2TV의 '브레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탓도 있다. '브레인' 막방 때 시청률 20%를 넘어 앞으로 '브레인'이 없는 상황에서 보다 많은 시청층을 더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하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에 비해 드라마적 완성도는 꽤나 실망스럽다.


먼저, 한국드라마의 고질적 병폐인 이른바 '쪽대본' 혹은 '초치기 제작' 관행의 그림자가 '빛과 그림자'에도 여지없이 드리워져 있다.

'빛과 그림자' 초기 방송분 몇회를 제외하고는 이 드라마의 배경은 초지일관 '겨울'이다. 이야기는 몇번의 계절과 몇해를 거쳐왔을 것이 분명함에도 '빛과 그림자'는 항상 겨울이다. 연기자들이 야외에서 연기할라치면 입김이 예외없이 등장하고, 강기태의 부하인 류담은 한동안 줄기차게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다녔다. 멋부린다고 가죽재킷 정도를 걸친 강기태는 또 어찌나 추워보이던지.

시대극인만큼 한정된 세트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계절마저 고정되어 있으니 연기 외에는 볼거리가 사실상 없다. 쇼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쇼의 모습도 드라마 초기에 비해 전혀 나아진 것 없이 지루함을 자아낸다.

주인공 강기태를 맡은 안재욱의 연기 자체는 흠잡을 데 없으나, 패기 찬 젊은이이어야 할 안재욱 눈가의 (세월의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적지 않은 주름이 몰입을 방해한다. 유채영을 맡은 손담비의 연기는 여전히 안습이고 배신자 조명국을 맡은 이종원의 연기도 꽤나 천편일률적이고 지리하다.

전국구 건달 보스 조태수를 연기한 김뢰하. 그가 등장해 강기태와 대결한 날 시청률은 20%를 넘었다.

 

물론 이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연기는 볼만하다. 전광렬은 역시 카리스마가 있으며, 최성원을 맡은 이세창은 느끼함의 극치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성지루와 안길강 그리고 최근 전국구 건달 오야붕으로 등장한 김뢰하의 연기는 역시 명품 조연의 이름이 아깝지 않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시시때때로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고, 결정적으로 '빛과 그림자'의 내용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인 '이정혜-강기태-유채영'의 삼각 관계가 너무나 지루하게 반복되고, 너무나 많은 우연으로 갈등이 만들어지는 등 억지스럽고 재미가 없을뿐 아니라 짜증까지 유발할 정도다.

 

하지만 아직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적 재미에 대한 기대를 접지는 않았다.

'빛과 그림자'는 50부작 짜리 드라마다. 1월 17일 방송이 16회였으니, 이제 약 1/3 정도 이야기가 전개됐고, 앞으로 보다 더 본격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든든한 배경을 가지게 된 강기태의 복수가 이제부터 전개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연예계를 주름잡을지 흥미가 간다. 여기에 유신 시절 권력 내부의 암투까지 꽤나 비중있게 더해져 극적 긴장과 몰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기대를 여태껏 놓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지게 하는 것은 '빛과 그림자'가 비교적 적나라하게 그리는 유신시절 권력의 그림자 때문이다.

'빛과 그림자'에 등장하는 권력자들이 실존했던 인물에게서 빌린 것이라면, '차지철'을 모델로 했음이 분명한 장철환은 비극적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여자를 불러다 바(치는 한편 가로채기도 했던)쳤던 '각하' 역시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그 유신 파멸의 과정이 그 시절 딴따라들에게는 어떻게 비췄을 것인지 흥미롭게 지켜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각하 '최후의 현장'에만 해도 딴따라가 있었고, 여자가 있지 않았던가.

10.26 직후 궁정동 안가의 모습. 사진 오른쪽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이 차지철의 시신이라고 한다.(이미지-MBC)

 

그리고 드라마 외적으로 '빛과 그림자'가 유신시절의 그림자를 계속 과감없이 그려낸다면 박근혜에 대한 평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힐링캠프'에 나와 토로했던 것처럼 유신 시절이 비록 그 개인적으로 아픈 가족사를 겪었던 때이겠지만, 그래서 나름 동정의 대상이 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아직 아버지의 시대에 대해 납득할만한 평가를 내놓은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정수장학회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빛과 그림자' 속 어딘가에 '각하의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가 존재한다. 그리고 박근혜는 경제성장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장 큰 정치적 배경으로 가지고 있고, 여전히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있다. 하지만 그 후광에 가려진,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유신의 그림자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2012년 '빛과 그림자'를 보면서 박근혜를 떠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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