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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귀에 박힌 '비비디 바비디 부'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2. 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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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전부터 TV에서 주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비비디 바비디 부'
처음엔 뭔말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장동건과 비까지 나와 '비비두 바비디 부' 주문을 외고 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모든 포로그램 사이 마다 이 주문은 흘러나오고 있다.
장동건이 한 번 이 주문을 외면, 다음엔 비가 나와서 다시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왼다. 그리고 또 조금 있으면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이 흘러나오는 또 다른 광고가 등장한다.
한 개 프로그램의 광고타임에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이 두세번 등장하는 것도 예사인 것 같다.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이제 왠만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것도 TV를 조금이라도 보는 사람이라면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을 외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SKT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퍼트리고 있는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을.
좀 더 열성인 사람은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 앞에 붙는 이상한 말이 '살라카둘라 메치카불라'라는 것도 이미 알 것이다.

SKT는 "2008년 한 해 '되고송'으로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한 생각대로T가, 2009년에는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로 새로운 긍정의 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며 "이제 이루고 싶은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 거라는 생각과 함께,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워보세요!"라고 권하고 있다.

'긍정의 힘 프로젝트' 좋은 말이다. 어려운 때 긍정적 사고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제안 자체가 나쁠리 없다.
그리고 지난해 SKT의 '되고송'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TV를 켜기만하면 흘러나오는 이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 마치 '반드시 당신이 이 주문을 외우도록 만들고야 말겠다'는 SKT의 의지가 불편하고, 심각하게 귀에 거슬린다.

'긍정의 힘 프로젝트'라는데, 내 생각에는 SKT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꼭 모든 국민들이 우리의 로고송을 따라부르고 SKT를 떠올리도록 만들겠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그야말로 '생각대로' 만들기 위해 이 주문을 이토록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펼쳐가며 퍼트리는 거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SKT의 의도는 '생각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미디어없이 살아가기 힘든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광고의 상당시간을 장악하여 별다른 메시지 없이(통신회사의 광고인데 통화품질에 대한 이야기도 요금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도 없는)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을 틈만 나면 '주입'시키는데 어찌 이 주문을 외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다. 나는 그래서 이 주문을 대단히 귀에 거슬린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TV만 틀면 흘러나오는 '비비디 바비디 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흘러나오는 '비비디 바비디 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채널을 돌려도 또 어느새 흘러나오는 '비비디 바비디 부'.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 자체는 듣기 싫어도 장동건과 비의 삐까뻔쩍한 외모를 내세워 그들의 달콤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비비디 바비디 부'는 차마 외면하기 힘들게 만드는 SKT의 전략이 참으로 얄밉고 무섭기까지 하다. 얼마나 자본력이 막강하길래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사실 '긍정의 힘'이라는 말 자체는 딴지 걸기 힘들지만, 거대자본을 가진 재벌회사가 '긍정의 힘 프로젝트'를 펼친다는 것 자체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지난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지금 겪고 있는 위기가 사상 유례없는 것이지만 다같이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의 힘을 믿으며 당당하게 일하겠다"고 말했다.

-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 석상에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경제적 장애물은 당,정이 힘을 모아야 해결할 수 있다"며 "지금은 '긍정의 힘'을 모을 때"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네번째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저는 할 수 있다는 의지, 하면 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뜻이 있는 것에 길이 있다고 저는 확신한다"며 이른바 '긍정의 힘'을 역설했다.

-지난해 8.15 광복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 63주년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자랑스러운 기적의 역사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다"며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명실상부 통일한국을 열어가겠다는 긍정의 힘을 천명한 명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7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자만은 경계해야 하지만 자신감은 가져야 합니다. 긍정과 발전의 역사관이야말로 우리를 희망찬 미래로 이끄는 원동력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행동을 불러오고, 긍정적인 행동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라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이명박 리더십'은 '긍정의 리더십'이라고도 불리며, 이명박 대통령은 '긍정의 힘 전도사'라고도 불린다. '긍정의 힘'이라는 게 결코 나쁜 게 아님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입만 열었다면 내세우는 '긍정의 힘'과 굴지의 대재벌이 펼치는 '긍정의 힘 프로젝트'가 나에게는 무관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면 된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긴 하지만, 학교생활, 군대생활, 직장생활 해본 사람들은 알거다. '하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한가지 더.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을 들으며, 무수히 귀를 파고 들어 끝내 머리 속에 박히고 만 그 주문을 들으며 미디어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자본력을 가진 집단이 한 번 작정하고 밀어붙이면 끝내 '생각대로' 되고 마는 이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방송을 가지고 그들의 의도를 밀어붙일 때 또 나는 얼마나 속수무책이 될지,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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