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신문이 다룬 티맥스 윈도, 블로고스피어와 극과극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7. 8. 13:03

본문

7월 7일,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티맥스소프트는 이날을 '티맥스데이'로 명명하고 자기들이 개발했다는 PC용 OS '티맥스 윈도9'와 오피스 프로그램인 '티맥스 오피스', 웹 브라우저인 '티맥스 스카우터'를 선보였다. 오전에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시연회를 가지고 오후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역시 설명회와 시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른바 '티맥스데이' 직후 인터넷에는 이날 발표회의 핵심이었던 '티맥스 윈도9'에 비관적인 블로거들의 글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발표회 자체에 대해서도 촌철살인의 비판글이 대다수였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상세하게 지적한 내용이니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핵심은 '티맥스 윈도9'의 불완전성에 맞춰져 있다. MS윈도와 호환성을 갖췄다면서도 스타크래프트 하나 제대로 구동시키지못하고, 동영상 재생도 매끄럽지 못한데다, 가장 심플한 구글 메인화면조차 깨져서 엉성하게 열리니, 잔뜩 기대하고 일부러 시간 내어 '티맥스데이'를 지켜본 사람들로서는 분통을 터트릴 만 하다.

심지어 자기들이 개발한 오피스 프로그램과 웹 브라우저를 '티맥스 윈도9'에서 시연하지 못하고 MS윈도를 빌려야 하는 티맥스소프트의 OS 기술력은 IT 분야의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안습 그 자체다.

더구나 OS 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외산 소프트웨어에 맞선 국산 소프트웨어의 등장을 강조하며 애국주의를 호소하면서도 정작 발표된 '티맥스 윈도9'가 순수한 자기들의 기술로서 만들어진 건지 아니면 '오픈 소스 코드'에 힘입은 건지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해명하거나 반박하지 못한 것을 보면 행사 규모와 그 의미에 비춰 한 마디로 수준 이하의 발표회임이 분명하다.

이런 발표회를 지켜본 대다수 네티즌들은 티맥스소프트 측이 올 11월에 '티맥스 윈도9'를 정식으로 출시하겠다는 것에 대해 역시 비관적이다.

그런데 제도권 신문들의 눈에는 '티맥스데이'와 '티맥스 윈도9'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미디어후비기'가 거의 매일 확인하는 종합일간지 5개 신문(경향/한겨레/조선/중앙/동아) 가운데 조선일보를 제외한 4개 신문에 '티맥스 윈도9' 발표 관련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이들은 '티맥스 윈도9'의 완성도 그 자체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거나 '왜 저런 얘기를 떠드나'며 짜증을 냈던 박대연 티맥스소프트 회장의 입과 티맥스소프트 측의 포부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 신문만 보면 마치 '토종업체'가 외국기업인 MS에 맞서 아주 대단한 작품을 하나 선보인 것 같다. 박대연 회장과 티맥소프트 측이 강조했던 애국주의와 정확히 코드가 일치하는 기사들을 쓴 것이다. 반면 블로거들에게는 당연한 화두가 되었던 '티맥스 윈도9'의 완성도와 기술력은 뒷전이었다.

7월 8일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오늘(7월 8일) <토종 '티맥스 윈도9' MS 윈도에 도전장>이란 제목의 기사의 시작부터 "이것은 왜곡된 시장구조를 깨기 위한 노력이다!"라는 박대연 회장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잡았다. 기사의 표제 상단에는 티맥스소프트의 회사 로고와 MS윈도의 로고를 'vs'로 대결시켜놓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기사 대부분은 "'메이드 인 코리아' 박 회장의 꿈"에 초점이 맞춰졌다.
"박 회장은 핵심 전략으로 '호환성'을 꼽았다"며 "실제 티맥스 윈도 9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MS 오피스 내 파워포인트, 워드 등 MS 응용 프로그램 및 파일이 실행된다"고 보도했고, "호환성 강조는, 처음부터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어렵게 하지 않고 친숙하게 한 다음, 점차 독자 기술을 도입해 시장을 잠식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며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였다.

박 회장의 입에 맞춘 만큼 "박 회장은 2011년에 해외 법인 30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국심'에만 '어필'하며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뜻"이라며 박 회장을 추켜세우는 내용도 빠지지 않았고, "'악'에 받친 듯 심경 고백도 늘어놓았다"며 '제2의 황우석'이라는 지적에 대해 박 회장이 "나랏돈 한 푼 안 받고 연구했다", "그 결과를 빠릴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 것도 그대로 인용해, 말 그대로 박 회장을 대변했다.

"MS 윈도에 맞서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이라며 스타크래프트 실행 등과 관련해 "시스템 상 불완전한 모습도 나타났다"는 내용도 3줄 가량 언급되었지만 이 역시 "아직 완벽한 버전이 아닌 만큼 최종 공개까지 남은 3, 4개월간 불완전한 점들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박 회장의 말로 간단히 덮혔다.

동아일보는 "일반인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 시연회는 1만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이 이날 행사를 어떻게 지켜봤는지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7월 8일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토종 '티맥스 윈도' MS에 도전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티맥스 윈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윈도XP와 호환성 문제로 당장 일반 소비자 시장까지 넘보기는 어렵겠지만 오피스·인터넷 등 한정된 용도로는 쓸만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소개했다.

'오피스와 인터넷 등 한정된 용도'로 쓸만한 제품을 가지고 대서특필한 것 자체가 우습기 그지 없지만, 중앙일보 역시 박대연 회장의 성공신화 등을 부각하며 "현재 50세인 그는 사석에서 'MS를 이기기 전까지 결혼도 미뤘다'고 말하곤 한다. 그는 'PC용 OS는 핵심 SW인데 시장 종속이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고 기술력과 경쟁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애국주의를 조장했다.

심지어 "요즘 일자리가 화두지만 티맥스 윈도로 전 세계 OS 시장의 10%만 차지해도 44억 달러의 매출과 10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며 그야말로 꿈같은 '주장'도 검증없이 소개했다.

비록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냈다"며 "제품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문하며 티맥스 측이 내세우는 '호환성'에 부정적인 의견들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역시 "정식 버전이 나온 뒤 MS 윈도나 리눅스와 비교해 보면 자연히 사라질 의혹들"이라는 티맥스 측의 반박으로 간단히 무마될 정도였다.

7월 8일 경향신문

이른바 진보 신문이라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다르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토종OS '티맥스 윈도' MS 아성에 도전>이라는 기사에서 '세계 PC 운영체제(OS) 시장의 제품별 점유율까지 그래프로 제시하며 "전 세계 OS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MS 윈도의 아성을 흔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썼고, "이제 소프트웨어 식민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박 회장의 말을 인용했다.

시연회 과정에서 드러나 기술적 결함은 "일부 오류"에 불과했고 "오류 정정 작업을 거쳐 티맥스 윈도 제품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다면 MS에 종속된 국내 PC 운영체제 분야에서 기술 주권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경향신문을 전망했다. "기술 주권"... 심상치 않은 표현이다.

한겨레는 아예 기술적 결함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MS 섰거라'…국산 윈도 나왔다>에서 "티맥스 윈도는 시제품 단계로, 그래픽카드 등 각종 디바이스 드라이버와의 호환을 100% 구현하지 못한 상태"라면서도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인터넷뱅킹 등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별 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역시 "티맥스 윈도 개발은 국내 소프트웨어 역사에 획을 긋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박 회장의 끝모를 자신감과 자화자찬을 그대로 인용했다.

이처럼 제도권 언론의 '티맥스 윈도9' 관련 기사는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여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박대연 회장 이하 티맥스 사람들이 홍보의 달인이라서?
국산 OS 개발 정도는 '아니면 말고' 정도의 사안이라서?
제도권 언론의 기자들이 블로거들에 비해 전문적 식견이 부족해서?

세번째 이유가 가장 큰 듯 하지만, 평소 전문성을 높이 평가해 마지 않던 한겨레 구본권 기자마저 저런 기사를 쓴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7월 8일 한겨레

그런 이유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박대연 회장을 보며 지적한 것이지만 '제2의 황우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티맥스 윈도9'와 관련한 제도권 언론의 보도는 아직 우리 언론들에게 '황우석 사태' 때 드러난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깔려 있다는 것.

좋은 게 좋은 거고, 잘 하면 대박인데 왜 비뚤어지게 보냐는, '진실보다 국익이 우선한다'는 그때의 논리가 여전히 제도권 언론들에게는 남아 있다는 거다.

이전 박대연 회장 관련 신문 기사를 보면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를 '입지전적의 인물'로 다루는 방식이 황우석 박사 뺨친다. 특히 "OS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솔루션 및 미들웨어(OS와 응용프로그램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와 함께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3대 분야로 티맥스는 국내 유일이자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세 분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동아일보), "OS 개발로 티맥스는 세계적 시스템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버금가는 다양한 기술을 갖추게 됐다. 현재 '미들웨어·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OS'라는 3대 시스템 소프트웨어 기술을 모두 가진 기업은 IBM과 MS뿐이다"(중앙일보)는 대목을 보면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목 놓아 외쳤던 황우석 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티맥스소프트와 박대연 회장의 노력이 성공하길 바란다. 비판이 주된 블로그들의 글을 읽고도 "도전정신만은 평가할만하다. 기대를 가지고 지켜봐야겠다"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중앙·경향·한겨레의 보도는 아니다.

'티맥스 윈도9'를 보건대, 적어도 IT 분야에서 비판적 저널리즘이 살아 있는 곳은 제도권 언론이 아니라 블로그임을 절실하게 느낀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