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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TV광고, 박원순을 신고하면 되나?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9. 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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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기 그지 없었지만, 그냥 귀엽게 보고 싶었다.
그래도 옛날에 보던 것들과는 비교하면 그나마 무난하다 싶기도 했다.

김행균 역장 편

왜 자신의 몸을 던져 어린이를 구한 김행균 역장 다음에, '111 콜센터'가 등장해야 하는지,
왜 불길 속에 자신의 몸을 던져 인명을 구하고자 했던 고 윤재희 소방교의 희생을 이야기한 다음에, '111콜센터'가 등장하는지,
그 조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참 애쓴다' 싶어 그냥 귀여운 짓으로 보려고 했다.
휴머니즘을 자극하는 이런 TV광고 이미 SKT 등 기업 이미지 광고나 공익광고에서 지겹도록 봐온 것이라 닳고 닳은 흘러간 트렌드지만, 그거라도 쫓아가보려는 가상한 노력으로 보고자 했다. 그래도 휴머니즘은 좋은 거잖아 싶었다.

하지만 고귀하고 숭고하고 안타까운 희생을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의 안보와 국정원의 이미지를 미화하는 데 이용하려는 뻔한 수작을 더 이상은 지켜보기 힘들다.

김행균 역장을 이야기하며 "잠시 잊고 지냈던, 대한민국을 지켜주었던 바로 그 분들을 생각합니다"라고 했을 때는 '누가 잊고 지냈단 말일까' 의아스러웠고, 윤재희 소방교를 이야기하면서도 마찬가지의 문구가 등장했을 때 역시나 의아스러웠는데, 서해교전에서 희생당한 고 박동혁 병장 편에서도 똑같은 그 문장을 보게되니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잠시 잊고 지냈던"이란 말이 지난 민주정부 10년, 누구 말대로는 '잃어버린 10년'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됐다.

고 윤재희 소방교 편

지난 정권을 흠집내고 싶었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서해교전을 들고 나올 것이지, 왜 애궂은 김행균 역장과 윤재희 소방교를 등장시켰을까? 그들과 간첩, 좌익사범, 산업스파이를 신고받는 국정원의 '111 콜센터'가 무슨 상관인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무척 난감하다. 누가 그들을 잊고 지냈길래 '111 콜센터' 광고에다 그들을 등장시킨 것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박동혁 병장의 안타까운 희생을 다룬 광고도 마찬가지다. 박동혁 병장을 통해 '국가안보'를 역설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국가안보는 국정원이 책임지는 과제다. '잠시 잊고 지냈다'면 국정원이 그랬나본데, 그러면 스스로 통렬하게 반성할 일이지 그의 죽음을 내세워 '111 콜센터' 광고를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고 박동혁 병장 편

MB 정권 하에서 국정원이 하는 일이라고는 국가안보 보다는 정권의 안보에 맞춰져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민 개인인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국정원이 나서 '국가'를 내걸고 명예훼손 소송을 벌이는 것,
노동계에 대한 불법적인 정치사찰 의혹,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교수들에 대한 사찰 의혹 등등등.

국정원 '111 콜센터' TV광고를 보고 박원순 변호사 같은 사람을 신고하고, 노동쟁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내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학자들을 고발하면 되는 걸까? 그러면 '잠시 잊고 지냈던' 그들의 희생을 제대로 되살리는 것일까?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예전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보던 양의 탈을 쓴 늑대와 밤말을 몰래 듣는 쥐를 등장시킨 스티커가 낫다. 국정원답고 솔직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얼마전 한껏 비웃음을 샀던 '안보신권' 이벤트가 MB정권 하의 국정원답다.

(관련글 : 기절초풍할 국정원의 안보신권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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