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부시가 불같이 화냈다'더니, 이제 '한목소리 내자'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8. 4. 21. 17:13

본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월 14일 중앙일보 보도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21세기 전략적 동맹'이란 것을 합의했다고 하지요.
기존의 한미동맹을 한 단계 격상시킨 거라고 청와대에서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으시고, 보수신문들도 환영 일색인데요.

제가 보기엔 '21세기 미국의 세계패권 들러리 서기' 정도가 이 동맹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 이번에는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지만, 미국이 괜히 한국의 무기구매지위를 '업그레이드' 시켜주겠습니까? 다 MD니 PSI 니 미국의 세계전략에 참여하는 대가가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미국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그게 이라크든 아프가니스탄이든, 앞으로 이란이 되든 팔레스타인이든 어디든 부르면 총들고 가야겠지요. 이런 전쟁 동맹을 두고 '한미동맹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는 식으로 환호작약하는 보수신문들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으면서 참으로 가슴도 아픕니다.

정말 보수신문(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으로 상징되는)들에게 미국은 너무나 소중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미국을 대하는 이들의 자세는 참으로 애틋하고, 눈물겹기까지 하더군요.

4월 21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앞으로 20~30년 안에 통일까지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힘이 돼줄 국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미국 외에 다른 답이 있을 수 없다"며 "양국 동맹이 전략적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이토록 노골적이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에 신문들의 보도를 분석하면서 아주 재밌는 것을 하나 발견했는데요. 바로 얼마 전 미국의 힐 차관보와 북의 김계관 부상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핵협상을 벌인 끝에 '합의'를 이뤘는데요. 바로 '싱가포르 합의'라는 건데... 아직 그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2.13 합의 이후 1단계 핵불능화에 이어 2단계 핵신고 과정에서 주춤하던 북미관계가 '싱가포르 합의'를 계기로 숨통이 많이 트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근데, 이 '싱가포르 합의'라는 걸 다루는 보수신문들의 보도가 되게 웃겼는데요.

일단 하나만 짚자면, 이 '싱가포르 합의'의 감춰진 내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북에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 등 북미관계의 좀 더 진전된 사안에 대한 합의라고들 하는데, 드러난 것 중에는 이른바 '간접시인'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인고 하니, 미국은 그동안 계속 의심을 가져왔던(아니 확신해왔던) 북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존재 사실과 시리아 핵기술 이전과 관련해 북에게 '솔직히 털어놔라'라고 요구해왔습니다. 근데, 북은 '생사람 잡지 마라,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구요. 서로 간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줄다리기를 해오느라 원래 작년 연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던 핵신고 절차도 차일피일 미뤄졌던 것이지요.

근데 이 부분에 대한 정리를 바로 '간접시인' 방식으로 하기로 한 건데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싱가포르 합의에서 비공개 양해각서의 형태로 미국이 "UEP와 핵 확산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것이 (우리의) 이해사항"이라고 적으면 북은 이런 내용에 대해 "반박하지 않는다"고 '간접 시인'하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간접시인' 방식에 대해서 합의해놓고도 그 표현을 어떤 영어단어로 할지('인정한다(admit)' '인식하고 있다(acknowledge)' '이해한다(understand)')를 두고 오랜 논란을 벌였다고 하니 정말 외교협상에서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게 되면서도 말 한 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까지 떠올리게 되네요. ^^


근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무엇이냐~
바로 싱가포르 합의가 간접시인 방식으로 타결될 거라는 소식이 힐과 김계관이 싱가포르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그니깐, 4월 7일경부터 합의가 이뤄진 4월 10일께까지 계속해서 흘러나왔는데, 이때까지 수구신문들은 힐과 김계관의 합의에 대해서도 '간접시인' 방식에 대해서도 아무런 딴지도 걸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닭짓'으로 남측은 외토리 신세가 되어 북과 미국의 협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북에 대해 ‘통미봉남을 꿈꾸지 말라’는 식의 비난을 제기하면서 배아픔을 드러낸 정도였습니다. 4월 7일 동아일보의 사설 <북은 ‘통미봉남’ 꿈도 꾸지 마라>가 대표적이죠.

동아일보는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새 대북정책은 거부하면서 미국과의 양자 대화에 나서는 배경도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다”며 “북한이 여전히 통미봉남 전술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라고 트집을 잡았는데, 과연 진짜 '착각'인지는 여러분께서 판단하시구요.

어쨌든 싱가포르 합의에 대해서는 동아일보는 이 사설에서 "이번 싱가포르 회동에서 뭔가 결실이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다며 "싱가포르 회동은 북한이 놓쳐서는 안 될 기회"라고까지 했습니다. 또 4월 9일 <힐 “제네바 때보다 한단계 진전” 김계관 “의견차 좁혔다”>에서 ‘간접 시인’ 방식에 대해 많은 비중을 쏟아 설명하면서도 전혀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또한 9일 <북, 의혹 간접시인… 핵 한고비 넘겨>에서 “핵 문제가 또 한 번 고비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며 합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무런 시비를 걸지 않았고, 중앙일보는 특히 10일 사설 <북핵 잠정합의, 열매 맺으려면>에서 “미국이 두 가지 쟁점에 대한 ‘이해 사항’을 적시하고, 북한은 이를 적절한 표현으로 수용하는 ‘간접시인’ 방식”에 대해 “하나의 타협안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며 “양측이 이렇게 한 발짝씩 물러나 이견을 좁혀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북에 대해 “당장 ‘표현’ 문제로 미국과의 잠정합의를 깨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고 충고하기까지 했죠.

미국이 진행하는 협상이다보니 비판은 못하겠고, 그저 북한에 대해서만 딴지를 걸어보려는 수작 정도인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데, 싱가포르에서 힐 차관과 김계관 부상이 합의한 내용이 ‘본국의 훈령(승인)’을 기다리는 사이 ‘부시가 화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삐걱대는 조짐을 보이자 수구신문들은 잘 안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치고 나오게 됩니다. 바로 ‘부시와 라이스를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진 힐 차관보를 제물로 삼는 방식인데요.

중앙일보가 먼저 시작했습니다. 중앙은 14일 <“부시, 북핵 검증 합의 불발에 격분”>을 싣고 부시와 라이스 등이 “싱가포르 북·미 회동에서 북한의 핵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에 합의하지 않은 데 격분했다고 워싱턴 소식통이 12일 밝혔다”며 “플루토늄만 신고 후 검증 대상으로 합의해 미 정부 수뇌부의 불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다음날 중앙일보는 <북핵 ‘합의 조급증’이 빚어낸 혼선>이라는 사설까지 실어 ‘얼마나 좋은 협의였는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한 힐 차관보의 말에 대해 “그의 장담은 공수표가 될 처지에 놓였다”며 “이번 사태도 힐 대표의 ‘합의 조급증’에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섣부른 주장을 쏟아냅니다. 심지어 힐에 대해 “공명심이 없어져야 제대로 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충고하기까지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아일보 또한 15일 사설 <북핵 신고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에서 “‘간접신고’ 방식은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명시한 작년 10·3합의와도 거리가 멀다”며 뒤늦게 트집을 잡습니다. 또 “힐 차관보가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신고기준을 낮춰주려 한 것이 화근 같다”며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도 걱정하는 합의안을 우리 정부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북핵 폐기를 위한 한미공조를 말할 수나 있겠는가”라고 우려를 나타냅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북-미 간 협상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주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에 관한 확고한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덧붙였죠.

조선일보는 사설까지 쓰진 않았지만 14일 <미행정부·의회 ‘싱가포르 북핵 잠정합의’ 반발>에서 “최종 타결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했고, 관련기사에 “만약 이번 합의가 좌초될 경우 힐 차관보에겐 엄청난 위기가 될 것”이라는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곧 이어 부시 미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를 최종 승인했다는 소식을 미 백악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면서 ‘싱가포르 합의’는 기정사실로 되고 맙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싱가포르 합의를 한미 정상이 공식적으로 '추인'하는 형식을 취했고, 북핵문제를 6자회담을 통해 조기종결하기로까지 했죠. 즉 북핵문제를 푸는 데 있어 싱가포르 합의가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자, 수구꼴통신문들에서 싱가포르 합의, 간접시인 방식에 대해 문제삼는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졌습니다. 힐 차관보를 까는 기사도 물론 자취를 감췄구요,

‘싱가포르 합의’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이같은 ‘해프닝’은 수구신문들이 미국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대적인 존재인지, 그리고 실제는 북미 관계 진전을 바라고 있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웃기지 않나요? ^^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