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개콘 '저승사자', 잔인하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8. 5. 20. 18:40

본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이 부활한 뒤 ‘인민배우’ 등의 역할을 맡다 별 빛을 보지 못했던 김준호가 지난 5월 11일 방송에서부터 ‘저승사자’라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11일 개콘 봉숭아학당은 시작과 함께 김준호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지적하며 “김준호는 지난 방송에서 못 웃겨서 퇴학당했다”고 했고, 이어 장도연이 ‘전학생’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봉숭아학당 선생님인 김인석은 장도연에게도 “잘해야 한다, 못웃기면 너도 퇴학당한다”고 했다.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이제 김준호가 안나오나 싶었는데, 김준호는 갑자기 ‘저승사자’로 등장해, 몸개그를 작렬시킨 장도연이 웃기지 못했다며 끌고 갔고, 나중에 양상국에게도 슬며시 다가와 ‘퇴학’시킬 것처럼 엄포를 놓아 웃음을 이끌어냈다.

‘북조선 최고의 인민희극배우’라며 누구나 다 아는 시시껄렁한 옛날 말장난 개그를 선보이는 등 그 속에서도 뭔가 웃음을 유발시켜 보려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 김준호가 어떻게 웃기려고 하나 이성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은 것은 아니나, 감정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관객/시청자와 김준호 사이에 웃음의 코드가 전혀 맞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등장시킨 ‘저승사자’.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의 특성을 녹여낸 나름의 ‘아이디어 캐릭터’로 보이긴 한다. ‘웃기지 못하면 퇴출당한다’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지상명제를 현장에서 바로 실천해버렸고, 그 마저도 하나의 웃음의 소재로 ‘승화’시켜 낸 것이다.

아이디어는 칭찬할 만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승사자’ 캐릭은 지나치게 잔인하다. 물론 저승사자가 ‘못웃겼다’며 누군가를 ‘퇴학’시키는 내용이 사전에 설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개 개그프로의 특성상 중간중간 애드립까지 설정되지는 않았을테고, 누군가 애드립을 쳤을 때 ‘못웃겼다’며 데려가려고 하는 것까지는 사전에 준비하지는 않았을 거다. 결국 어찌됐든 봉숭아학당 출연 연기자들은 ‘웃음을 빵빵 터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에서 ‘편집’되지 않을까 매주 노심초사하는 개그맨들이 아닌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공개코미디를 좋아한다. 특히 개콘의 열렬한 팬이다. ‘달인’에 환호하고, ‘박대박’에서 배꼽을 잡는다. 하지만 공개코미디에서 관객과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아이디어 짜내고, 쉴새없이 맞춰보는 개그맨들의 비애 또한 안다. 개콘의 큰 웃음, 빅 웃음이 그런 고생의 산물이라고 믿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꼭 잔인한 공개코미디만을 통해서 개그맨들의 역량을 소진시켜야 하냐는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다.

개콘의 김준호가 ‘저승사자’로 나와 두 번이나 장도연을 ‘퇴학’시킨 것을 보고, 내가 정말 잔인하다 싶었던 것은 개그맨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매주 한 번씩 ‘공개오디션’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가슴 초조함과 긴장을 안고 살면서, 그런 자신들의 처지조차 웃음의 소재로 등장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비록 무대에서는 웃지만, 그 웃음이 진정한 웃음일까?

예전 ‘KBS 스페셜’에서 이런 공개코미디 프로그램 속에서 개그맨들이 겪는 비애를 다룬 적이 있다. 그때 ‘옥동자’ 정종철은 “공개코미디가 재미없는 아이템은 빨리 없어지고 새로운 게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재미없는 개그맨은 바로 교체된다는 것을 말한다. 못 웃기면 내려와야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성호는 “항상 심판을 받으러 가는 느낌이기 때문에 떨린다. 안 웃고 썰렁하다 싶으면 땀이 흐르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게 된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목이라도 매고 싶은 압박감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관련글 : 원조 다운 원조 '개콘', '개그 전성시대' 혹은 '유행어 전성시대')

그리고 현역 중 우리나라 개그맨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최양락도 공개코미디에 대해 “쉽게 얘기해서 요즘 개그프로는 젊은 개그맨들이 ‘누가 누가 더 잘 웃기나’를 겨루는 웃기기 자랑대회”라며 “‘자 여러분들, 지금부터 이 사람이 웃길 거 에요’ 이렇게 쌈을 시키면 그게 참 얼마나 어려운 무대가 되겠냐?”라고 지적했다.

봉숭아학당에서 김준호가 저승사자로 나와 누군가를 ‘못웃겼다’고 데려가는 모습을 보고, 설혹 설정에 따라 끌려가는 것이라 해도, 장도연의 뒷모습에서 난 개그맨들의 슬픈 비애를 본 것 같다. 그리고 옆에서 웃고 있는 동료 개그맨들의 웃음에서도 공허함을 느꼈던 것 같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