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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양승동'될 각오 반드시 지켜야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1. 2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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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를 이명박 정권의 나팔수, 관제방송, 관영방송으로 만들기 위해 온 KBS의 낙하산 사장 이병순이 양승동 PD와 김현석 기자를 파면하고, 성재호 기자를 해임한 것과 관련해 KBS의 기자와 PD들이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이병순이 이들을 징계할 경우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던 KBS노조가 주춤하는 동안, 같이 일하던 동료가 잘못도 없이 한순간에 거리로 내쫓겨진 것에 대해 일선의 기자와 PD들이 참여하고 있는 KBS PD협회와 기자협회가 먼저 나선 것이다.

임의단체인 이들의 '제작거부'는 노조의 총파업처럼 노사관계 쟁의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KBS노조는 '제작거부'를 결의한 기자와 PD들이 또 다시 파면과 해임을 당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총파업을 내걸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아울러 나는 KBS 기자와 PD들이, 자신들이 스스로 '결의'한 '전면제작거부'를 반드시 관철해줄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특히 총회를 진행하면서 '나를 징계하라', '제2의 양승동이 되겠다'고 했던 PD들이 부당하고 충격스러운 이병순의 징계에 맞서 결연하게 싸울 것을 촉구한다.

이미 95%가 넘는 찬성으로 '제작거부'를 결의한 PD와 기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어제 KBS의 뉴스와 프로그램을 보면서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이런 '당부'를 하게 된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씨가 'KBS뉴스에는 KBS 사태가 없다'라는 글에서 지적했듯, 지금 KBS의 프로그램에서는 너무나 충격스러운 이번 사태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KBS의 간판뉴스프로그램인 '뉴스9', 그 다음 가는 뉴스프로인 '뉴스라인'에서 KBS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타방송사인 MBC와 보도전문채널 YTN이 사안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과는 딴판이다.

그런데 KBS 보도프로그램에서 이 사안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유창선 씨도 "그나마 저녁 7시 뉴스에 면피용으로 내보냈다가 영향력있는 9시 뉴스에서는 뺀 것을 보면 속이 보인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했듯 저녁 7시 뉴스에서 이 사안을 단신으로 다뤘다. 그리고 유창선 씨는 이후 '뉴스9'에서 이 보도가 빠진 것을 두고 "혹시 이병순 사장이 7시 뉴스를 보고서 뭐라한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지적했지만, 자정인 12시 '마감뉴스'에서도 이 사안은 다뤄졌다.

아시겠지만, '뉴스9', '뉴스라인', '마감뉴스' 등은 KBS 보도본부의 기자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KBS 기자들은 영향력이 미미한 저녁뉴스와 마감뉴스에서 이 아이템을 살린 것이다.

그리고 KBS2TV의 <시사360>. <시사투나잇>이 폐지된 뒤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KBS PD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사360>에서도 KBS의 중징계 사태가 다뤄졌다. KBS PD들이 이 아이템을 살린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KBS 기자에게는 격려를, KBS PD들에게는 비판을 하고 싶다. 앞서 KBS 기자들과 PD들이 'KBS 중징계' 관련 아이템을 '살렸다'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에 기자들은 이 사안을 살리기 위해 내부에서 꽤나 노력한 것 같고, PD들은 이 사안을 살리기 위해 대충 타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보도본부 혹은 보도국, 즉 기자들이 제작하는 뉴스프로그램의 경우 아이템 하나를 싣기 위해 꽤나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MBC에서 방송한 <스포트라이트>를 보신 분들은 이해가 빠르겠지만, 기자들이 취재한 아이템은, '아이템 선정 과정'에서부터 마지막 '방송'에 이르기까지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각 취재라인(사회부, 정치부, 문화부 등등..) 안에서만도 선임-후임 구성에 따라 몇 단계가 필요하고, 취재가 마무리되었다 하더라도 '팀장-국장-본부장' 등에 이르기까지 몇 단계의 데스킹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두고 '게이트키핑'이라고 하는데, 기자들이 경우 이러한 과정을 밟는 이유로 '방송내용이 검증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즉, KBS의 기자들은 이런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만 방송되는 아이템을 비록 '뉴스9'와 '뉴스라인'에서도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저녁뉴스와 마감뉴스에서는 관철시킨 것이다. 추측컨대 KBS 기자들은 이 과정에서 기자협회 등을 중심으로 적지 않게 보도본부 내 간부들과 싸웠을거라 여겨진다.

그 이유 중 하나, 마감뉴스에서 'KBS중징계' 관련 아이템이 비록 마지막에 배치되었고, 앵커가 코멘트하는 단신 형태도 보도되었지만, 단신 치고는 1분에 이를 정도로 보도 시간이 길었다. 20~30초가 기본인 단신 중에 이 정도 길이로 방송되는 아이템은 거의 없다. 그리고 보도 내용도 기자협회와 PD협회의 제작거부 결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사측의 입장도 반영되었지만, 약 10초 정도에 불과했다.

(1월 19일 KBS '마감뉴스'의 'KBS중징계'관련 보도)

<시사360>에서는 이 아이템이 2분 10초 가량 다뤄졌고, 역시 마지막에 배치되었다. 기자들이 만든 뉴스보다 PD들의 제작물이 2배 이상 길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아이템은 싸우긴 싸웠으나 치열함이 없이 싸웠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첫째, 전체 방송시간 28분여 동안 5~6건의 아이템이 방송되는 가운데 2분이 약간 넘는 아이템은 그 자체가 일단 '면피용'이다. 다루긴 다뤄야겠는데, 취재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취재하지 못한 경우 이런 식으로 방송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KBS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총회다 뭐다 그 내용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KBS PD들이 내용을 몰라 이렇게 다루진 않았을 것이다.

둘째, 기자들의 보도가 '사실 관계 전달'에 초점을 둔다면 PD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심층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PD수첩>, <KBS스페셜> 등이다. <시사360> 이전의 <시사투나잇> 또한 이런 심층성에다 데일리 프로그램으로서 신속성 등을 생명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사360>에서 다뤄진 중징계 관련 아이템은 '심층성'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사측 입장과 한나라당 측의 입장을 몇차례나 소개하는 등 '기계적 공정성의 굴레'에 얽매였다.

셋째, PD들의 프로그램은 '관점'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시사360>에서는 '관점'이 없었다. 기껏해야 기자협회와 PD협회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에서 이번 KBS중징계의 부당함을 간접적으로 확인할뿐이었다. 그조차도 '제작거부' 등 향후 대응에 비중을 둬, 이병순의 이번 징계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다루지 못했다.

넷째, 기자들이 여러 단계의 게이트키핑 과정을 거치는 반면, PD들은 비교적 간소하다. '제작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온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해당 프로그램 내에서 결정하면 대체로 관철된다. 정연주 사장까지는 대체로 그랬다. 아이템을 배치하는 과정에 상부라인과 이견이 있더라도 싸우는 절차가 기자들에 비해 간단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병순 들어 KBS사측이 <시사360>을 예의주시하며 심의도 매우 꼼꼼하게 한다고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심야시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로밖에 관철하지 못한 것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종합하자면, 동료 기자 1명은 파면, 1명은 해임된 것을 본 KBS 기자들은 이전에 비해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면, 동료 PD, 그것도 'PD협회장'을 지낸 자신들의 지도자가 파면되는 것을 본 KBS PD들의 결의는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시사360>을 앞의 여러 각도에서 본 나로서는 이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면적인 제작거부'를 결의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 정도로밖에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KBS의 기자와 PD들은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당장 내일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한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선 기자와 PD들의 제작거부가 제대로 관철되어 효과적으로 사측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작거부에 참여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제2의 양승동, 제2의 김현석, 제2의 성재호'가 될 각오로 임해야 한다.

부디 KBS 기자와 PD들의 제작거부가 반드시 야만적인 부당보복징계를 철회시키고 KBS의 양심을 되찾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KBS 기자와 PD들의 제작거부로 '1박2일'을 못보더라도 나는 괜찮다. 설연휴 동안 특집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대다수 시청자와 국민들 역시 나와 다르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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