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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김정운 보도, 불신하는 이유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6. 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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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그의 3남인 김정운이 결정됐다는 미확인(현재까지) 정보가 국정원으로부터 흘러나온 뒤 언론에서 김정운 관련 보도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 언론에서 김정운의 사진이라며 누군가의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 한국 언론에서 이를 받아 역시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와중에 한바탕 오보 소동까지 겪었지만, 언론들은 여전히 신중함 보다는 속보경쟁와 특종경쟁에 치중하며 김정운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을 이용한 극심한 상업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6월 15일 KBS는 김정남 암살설 등을 보도했다.

특히 KBS의 '김정남 암살설' 보도는 시청률을 조금이나마 올리려는 저급한 행태에 불과하고, 오늘(6월 17일) 주요 지면을 김정운 관련 기사로 도배한 동아일보 역시 신문을 한 부라도 더 팔아보려는 황색저널의 저급한 상업주의에 다름 아니다.

오늘 동아일보 보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6월 17일 동아일보 1면

동아일보는 오늘 <3남매가 왔다, 북한에서...>라는 제목의 기사를 "정운이 살았던 집", "애용했던 농구대?"라는 제목을 단 사진까지 덧붙여 1면에 큼지막하게 실었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5면과 6면에도 관련 기사를 도배했다. 이 과정에서 동아일보의 파리특파원 송평인은 무려 5건의 기사를 썼다.

이 모두가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김정운의 스위스 베른의 슈타인횔츨리 공립중학교를 다녔다며 그의 유학시절 사진을 공개한 보도에서 바탕을 둔 것으로, 마이니치의 기사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동아일보는 이를 기정사실화해서 보도를 쏟아냈다. 특히 보도량만 많은 게 아니라 보도 내용 또한 지극히 허접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어서 실소가 절로 난다.

1면에 게재된 "애용했던 농구대?" 사진의 경우 이런 캡션이 달렸다.

"김정운이 다닌 것으로 알려진 슈타인횔츨리 공립중학교 운동장에 있는 농구대. 당시 수학 교사였던 페터 부리 교장은 '그는 특히 농구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게 과연 1면에 실릴 가치가 있는 사진인가?

또 5면에도 김정운이 살았다는 집과 김정운이 다녔다는 학교 등의 위치와 거리를 상세하게 표시한 지도까지 실었는데, 도대체 이 무슨 뻘짓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송평인이 베른에서 취재한 내용은 김정운이 살았다는 동네가 어떤 곳인지, 학교는 어떤 곳인지 등을 동네 사람과 학교 관계자들에게 묻고 다닌 것이 주로인데, 그 내용이 크게 실린 지면을 보면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다.

6월 17일 동아일보 5면

위 동아일보 5면의 지도

동아일보와 송평인의 뻘짓은 진작에 확인한 적이 있다.

지난 3월 23일 동아일보 송평인 특파원은 <"김정운 가명은 박철/마이클 조든 좋아해">라는 기사를 쓴 바 있다. 스위스의 주간비 레브도가 '김정운이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 다녔다'고 보도한 내용을 인용한 기사였는데, 당시 송평인은 레브도 기사의 주요 내용을 상세히 인용한 것뿐 아니라 "김정운은 활동적이어서 겨울철에는 금요일마다 친구들과 함께 스키를 타러 다녔고 외부 견학수업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며 마치 직접 본 것처럼 김정운의 베른국제학교 생활을 사실처럼 썼다.

하지만 레브도의 기사는 이미 그보다 훨씬 전에 일본 언론인과 국내 전문가의 취재 등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이 베른국제학교를 다녔다며 보도된 내용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으로 조금만 사실을 확인하면 어이없는 오보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심지어 나같은 비전문가도 그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는데, 송평인은 사실 확인 같은 건 전혀 없이, 레브도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고 심지어 사실로 단정짓기까지 한 것이다.

(관련글 :
스위스 국제학교 박철은 김정철인가? 김정운인가?)

3월 23일 동아일보의 김정운 관련 기사. 파리특파원 송평인이 썼다.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기사가 등장했는지 또한 눈에 훤히 보였다. 레브도 기사가 나온 건 3월 5일인데, 이 보다 20여일 지난 3월 22일 연합뉴스가 레브도의 기사를 인용해 "김정운이 베른국제학교를 다녔다"고 보도했고, 그 다음날 일간지들이 특파원 등을 활용해 허급지급 레브도 기사를 베껴 쓴 것이다. 중앙일보 정도가 레브도 기사에 약간의 의문을 제기했지만, 동아일보 송평인은 그저 베껴 쓰기에 급급했다.

즉, 지난 3월는 김정운이 베른국제학교에 다녔다고 보도했다가, 이제와 마이니치가 다른 보도를 하니 같은 김정운이 이제 공립학교에 다녔다고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를 쓴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당시 기사가 오보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 같은 친절한 짓은 동아일보와 송평인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위스 신문, 김정철 재학시절 새 사진 공개>라는 기사에서 자신이 석 달 전에 김정운이 다녔다고 했던 베른국제학교에 안면 하나 바꾸지 않고, 과거 자신의 기사에 대한 그 어떤 해명도 없이 뻔뻔하게 '김정철이 베른국제학교를 다녔고 새로운 사진이 공개됐다'고 쓰기도 했다.

김정운의 사진이라고 보도한 마이니치

물론 마이니치의 보도가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전혀 없지 않다. 한 예로 김정일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해 김정일 위원장 일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마이니치가 보도한 사진의 진위를 묻는 MBC에 "귀와 코는 닮았지만 눈매가 가는 것이 좀...확신하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사실로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언론들이 요란을 떠는 것은 그동안의 북한 관련 보도에서 드러난 여러 잘못들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으로 부적절한 행태다. 특히 이를 사실인양 단정하는 태도는 더욱 부적절하다. 이번 마이니치의 보도와 관련해 대다수 언론은 거의 사실로 인정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한겨레조차 "정운씨는 집에서 학교까지 약 200m를 경호 없이 혼자 다녔다"며 마이니치 보도를 사실로 단정지어 썼다. 경향신문 정도가 매 기사 문장마다 "보도에 따르면"이라고 했을 뿐이다.

하물며 마이니치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동아일보처럼 시시콜콜하게 보도할 이유도 전혀 없다.

아직 김정운이 북한의 후계자로 공식 인정되었다는 증거는 그 어디서도 제시되지 않았다. 만약 그가 후계자라고 하여도 나중에 공개석상에 등장할 김정운이 마이니치에서 보도된 사진의 인물과 다를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어설픈 추정으로 지면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전쟁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1분, 1초라도 더 쓰면 오죽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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