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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사전, 숨은기사찾기 놀이 만든 동아일보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11. 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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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동아일보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소식을 어떻게 다뤘을까?
동아일보 창업자인 김성수가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었으니, 동아일보는 대대적인 마녀사냥과 비난으로 대응할까, 아니면 쌩 깔까, 궁금했다.

궁금증을 해소하려 아침부터 펼쳐 본 동아일보.
와우~ 동아일보의 센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으니.
놀랍다 못해, '아..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은 생각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잠깐 동안 멍 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동아일보가 왜 동아일보인가, 오늘 동아일보는 다시 한 번 나의 뇌리에 깊이깊이 각인시켜줬다.

다름 아니라, 동아일보는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며 격한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란 뉴스를 '숨은그림, 아니 숨은기사찾기'라는 놀이로 승화시켰다. 창업자가 적시된 친일인명사전 발간이지만, 동아일보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제공할 거리로 만들어냈다.

자, 여러분도 동아일보판 '친일인명사전 숨은기사찾기놀이'에 한번 참여해보시라.

11월 9일 월요일 발행된 동아일보는 본지 36면과 별지(섹션) 44면 등 모두 80면으로 구성되었다. 일단 별지는 제외시켜놓자.
그럼 본지 36면 중에서 친일인명사전 기사를 찾아보자.

1면.
상단엔 "흐르는 강물처럼… 거침없는 레이스"라는 제목의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 사진이 크게 실렸고, 그 아래엔 관련기사와 4대강, 세종시 관련 기사가 실렸지만 친일사전 기사는 없다.

2면.
'종합면'인데 '아오지 출신 탈북 여학생의 수기''가수 장나라 아버지의 반론' 등이 동아닷컴에 실렸다는 소식은 있어도 친일인명사전 기사는 없다.

3면.
환경부의 4대강 환경영향평가 주요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4면.
'투르 등 서울 국제사이클' 대회 우승자의 '스토리' 등 관련 기사로 도배됐다.

5면.
역시 '대회 이모저모'와 "뜨거운 열기 느꼈다"는 오세훈 서울시장 관련 기사 등 '투르 등 서울 국제사이클'로 도배됐다.

6면.
4대강과 세종시 관련 정치권 동향이 종합됐다.

7면은 광고다.

8면.
<이재오 '5000원짜리 점심' 잘 지키나> 등 이런저런 기사가 게재됐다.

9면은 또 광고다.

10면.
국제면으로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 관련 기사들이 실렸다.

11면은 광고.

12면.
<"휴가 보내주세요" 군홈피 몸살>, 이광기씨 아들 신종플루 사망 등 이런 저런 소식이 실렸다.

13면.
날씨와 함께, <마약인줄 알고 덮쳤는데 '한방 정력제' 와르르> 등의 기사가 실렸다...고 확인하고 지면을 넘기려는 찰라,

11월 9일자 동아일보 13면


맨 아래 약 200자 짜리 토막 기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회>. 여차하면 실렸는지 안 실렸는지 확인하기 힘든 위치에다, 심지어 옆에는 '마약', '정력제' 등 눈길을 사로잡는 단어로 제목을 장식한 기사가 시선을 방해하기조차 한다.

친일인명사전 관련 동아일보 기사


어떤가. 다들 잘 찾으셨나?
자사 창업자가 명단에 포함한 친일인명사전 발간 소식을 '숨은기사찾기 놀이'로 승화시켜 독자들에게 월요일 아침 웃음을 선사한 동아일보의 살신성인의 노력이 눈물겹지 않은가?

그런데... 지면을 계속 넘기다보면 동아일보의 이런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마는 현장도 목격할 수 있으니, 이왕이면 동아일보의 사설까지는 넘겨보지 말길 바란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이들에 대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해 정통성이 북에 비해 부족하다는 좌파사관의 확산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에 단호한 대처로 맞서지 않을 수 없다"고 하니, 눈을 어지럽히고, 속을 뒤집어놓고, 기껏 웃음을 줘놓고, 한순간에 분노로 만들어버리니 이 또한 동아일보다운 재주랄까.

동아일보 사설


그럼에도 또 재미를 찾자면, 사설에서 "단호한 대처로 맞서지 않을 수 없다"며 기세등등해놓고, 기사는 저렇게 구석에 처박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는지, 아닌지조차 확인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또 무슨 허무개그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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