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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밤, 멧돼지를 소탕한다는데..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9. 11. 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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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밴드', '노다지'...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가 확 바뀐 새로운 모습은 12월 6일 첫 방송을 한다. 한국PD연합회 회장을 하는 등 한동안 MBC를 떠나 있던 '쌀집아저씨' 김영희 PD를 '총괄책임PD'로 내세워 '시청자와 함께 하는 유익한 방송', 즉 김영희 PD의 장기인 '공익적 예능'을 선보일 예정이다.

MBC는 방송을 앞두고 보도자료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새롭게 방송될 일밤의 코너들을 소개했는데,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헌터스), '우리 아버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비밀'(단비)이 그것이다.

'헌터스'는 농작물 피해는 물론 도심에서까지 인간을 공격하는 멧돼지 소탕작전을 보여주는 '라이브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고, '우리 아버지'는 '이 시대의 아버지, 시청자가 주인공이 되는 아버지 기살리기 프로젝트'로 '공감 버라이어티', '생활 밀착형 버라이어티'를 내세우고 있으며, '단비'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세계 어디든 간다는 '초특급 글로벌 프로젝트'라고 내세운다.

하나같이 '역시 김영희 PD'라 할만큼 소재 자체가 와닿는다.

특히 '리얼 공익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단비'는 첫번째로 물부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로 달려가 '기적의 우물'을 만든다는데, 실제 잠비아에서 '기적의 우물'을 샘솟게 한다니 어쩌면 예전 '느낌표-눈을 떠요'나 '아시아 아시아'에서 느꼈던 '감동'을 줄 것 같다. 아마도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 책까지 펴낸 김영희 PD의 경험이 반영된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김영희 PD(사짐-MBC)


그리고 '단비'보다 김영희 PD의 감각이 더욱 돋보이는 코너는 '헌터스'다. 주말 버라이어티에 '멧돼지'를 등장시키다니! 최근 도심 곳곳에서 출현해 인간을 괴롭히고, 농촌에서는 엄청난 농작물 피해를 가져와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멧돼지'가 아닌가. 그 멧돼지를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다룰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코너 세부 소개 내용을 보니 마냥 그 기발함에 박수만 보내기는 힘든 것 같다.

'멧돼지'라는 아이템에 머리가 번쩍했다면, '멧돼지 소탕작전'이라는 코너의 내용은 전적으로 좋게만 보기는 힘든 것이다.

물론 '멧돼지'는 유해조수로 천적이 사라져 개체수가 급증함에 따라 인간에게 갖은 피해를 주고 있어 '소탕'할 대상이긴 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이다. 일밤 '헌터스' 앞에 붙은 또 다른 말은 '생태구조단'이다. 생태계를 구조하겠다면서 '멧돼지 소탕작전'을 펼친다? 궁합이 잘 맞지 않다. 더구나 '생태구조단, 헌터스'라는 '생태르 구조하는 사람'과 '사냥꾼' 혹은 '총잡이'의 조합은 더욱 어울리지 않고 상호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어차피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동물은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고, 피치못할 일이긴 하나 그걸 대놓고 '공익'이라고 하는 건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 멧돼지가 자기들 스스로 인간에게 피해를 주려고 일부러 짝짓기를 많이 해 개체수를 늘린 것도 아니고 산업화, 도시화, 인간으로 인한 먹이사슬 파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개체수가 증가한 것인데, 그걸 무조건 때려잡는 게 '생태구조'요, '생태계를 위한 공익'이라고 부르기는 어색하다.

뿐만 아니라 '헌터스'에는 전국의 일등포수들로 구성된 '포수 자원봉사단'이 참여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일밤에서는 멧돼지를 놓고 쫓고 쫓기는 수렵장면과 총소리가 난무하고, 어쩌면 피를 낭자하게 흘리는 멧돼지의 처참한 모습까지 등장할 지 모를 일이다. 김영희 PD는 기자간담회에서 "연예인들의 사생활 폭로나 ‘막말방송’이 아닌, 가족이 함께 모여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고 새로운 일밤을 소개했는데, 총을 쏴대며 멧돼지를 잡는다면 그 장면이 가족이 함께 모여 보기에 적절할 지 의구심이 든다.

'느낌표-이경규의 다큐멘터리 보고서' 시절 이경규씨와 김영희 PD


예전 MBC '느낌표!'에서는 '이경규의 다큐멘터리 보고서'라는 코너가 방송된 적이 있다. 김영희 PD는 이 프로그램의 책임PD였다. 당시 이 코너는 양재천에 텐트를 치고 몇날며칠을 고생한 끝에 서울 도심 한 가운데인 양재천에 너구리가 살고 있음을 보여줬다.

도심 속 인간과 환경의 문제를 야생동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이 코너에서 당시 이경규는 "동물이 떠난 세상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라고 코멘트했다. 과연 그 때 그 양재천의 너구리와 이번에 일밤에서 다루려고 하는 멧돼지는 인간에게 미치는 피해의 규모 외에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무엇일까. 하지만 양재천의 너구리는 보호 대상이었고, 멧돼지는 박멸 대상으로 다뤄지려 한다.

아직 방송 전이기에 이런 우려는 예단일 수 있다. 특히 김영희 PD의 감각이라면 이런 우려를 충분히 불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일개 시청자인 나로서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스타 PD인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는 알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래서 감동과 재미, 공익과 웃음을 함께 줄 수 있는 말 그대로 '공익적 예능'이 2009년에도 먹힐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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