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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에 닭피 바른 '추노' 제작진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10. 1. 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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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모자이크' 논란이 거세다.

'추노'의 책임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최지영 CP는 "과도한 노출로 선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상파 드라마로서 지킬 것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모자이크 처리(정확히는 '블러 모자이크')한 이유를 밝혔다.

'추노' 제작진 중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김신일 PD 또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지호가 이다해를 치료하는 장면에서 이다해의 웃옷을 벗기는 장면을 흐리게 처리한 이유가 앞서 이다해 겁탈 장면 등에서 일었던 선정성 시비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특히 '추노'의 책임프로듀서 등을 맡고 있는 이들의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들이 밝힌 이유는 이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고 있는 곽정환 PD가 문제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한 이유와 일치하지는 않으리라 여겨진다.

오히려 안하니 못한 모자이크를 통해 선정성 시비를 차단하겠다고?
설마 곽정환 PD가 정말 그런 의도로 이다해의 상반신을 흐리게 처리했을까?

문제의 모자이크 장면


누가 봐도 튀고, 누가 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고, 누가 봐도 오히려 더 선정적인 모자이크가 아닌가?

근 10년 간 경쟁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추노' 같은 웰메이드 사극을 만든 연출자가 선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그런 아마추어도 하지 않을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는 걸 믿을 수 없다.

장혁에게 주문한 게 '300'의 복근이었을 정도로 '그림'의 완성도를 따지는 연출자가, 이미 사전제작을 통해 10부작까지 만들어놓은 작품에다가 그런 어설픈 모자이크를 칠한다? 오로지 선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근본적인 이유는 최지영 CP가 밝힌대로 였을 것이다. 선정성 시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곽정환 PD가 실제 모자이크 처리를 한 이유는 오히려 그것과 반대라고 생각한다.

최지영 CP는 "이다해가 산에서 겁탈당하는 장면이 정지화면으로 나도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지상파 드라마로서 지킬 것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이다해의 노출 장면을 보고 가족들끼리 보기 민망했다는 의견을 들었다. 공영방송 PD로서 면목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추측컨대 KBS는 CP 등 윗선을 통해 실제 제작진 즉 곽정환 PD에게 선정성과 관련한 압박을 줬을 것이다. '공영방송에서 저런 노출신이 그대로 나갈 수는 없다'는 따위의 주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모자이크가 이뤄졌다.
그런데 허거덩~ 정지화면으로 보면 이다해의 겁탈장면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모자이크가 이뤄졌다. 누군가의 말대로 마치 모자이크 처리된 일본 AV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다해 겁탈장면과 부상치료장면


나는 곽정환 PD가 이런 식으로 모자이크 처리를 한 이유가 첫째, 쓸데없는 공영방송의 품위를 들먹이며 작품의 완성도에 초를 치는 KBS를 물먹이기 위한 반항이었고, 둘째, 이 정도 노출이랄 수 없는 노출조차 시빗거리를 삼는 일부 시청자와 거기에 기생하는 연예매체들을 물먹이기 위한 기발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추노' 2회에선가 천지호가 대길을 잡을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승냥이를 잡는 방법을 묘사한 적이 있다.

승냥이를 어떻게 사냥하는지 알아? 장대를 이렇게 거꾸로 박아놓고 장대끝에 닭피를 발라놓는거야. 그러면 승냥이는 닭피 냄새에 미쳐가지고 지 혀가 찢어지고 갈라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 핥아먹지. 결국 그 피가 지 피인지도 모르고 핥아 먹다가 결국 승냥이는 뒤져버려.

천지호 역의 성동일


성동일이 설명할 때는 제법 살벌했는데, 글로 써놓으니 그런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어쨌든, 곽정환 PD는 이번 모자이크를 닭피 삼아 KBS의 고리타분한 윗분들을 부르고, 쓸데없이 입방정 늘어놓기 좋아하는 일부 시청자들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자이크를 보고 환장하고 있다.

오히려 더 선정적인 장면으로 선정성 시비를 차단한다!
나의 추측과 예상이 맞다면 곽정환 PD는 정말 영리한 사람이 아닐까?

곽정환 PD


곽정환 PD 이하 '추노'의 실제 제작진은 MB의 특보 출신이 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KBS의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추노'의 기획의도를 남겨놓는 사람들이다.

이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 되는 세상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의 삶에서
희망이나 꿈, 전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그런 세상을?
절반 이상이나 되는 인생의 값어치가 단지 얼마짜리 돈으로 결정된 그런 세상을?
절반 이상되는 이들의 사람답게 살고픈 바람이 오직 '도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을?

....

만약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각자의 얼굴을 저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저잣거리를 살아가는 그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화폐가치가 인생의 값어치로 손쉽게 매겨지고
'88만원 세대'라던가,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구들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하는 현재의 모순을
그 시대와 등가로 놓을 순 없다하더라도
맨몸으로 부딪혀 싸우지 않고서는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랍답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만큼은 여전하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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