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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명단 공개로 7만표×α 날린 한나라당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10. 5. 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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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국회의원 여러명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명단을 게재한 것은, 이를 통해 몇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거창한 명분으로 내세우는 '국민의 알권리'라는 것은 그저 입에 발린 말일뿐, 그것이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마 명단 공개에 찬성하는 사람들 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의도한 바는 분명하다.

첫째, 그들은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전교조를 위축시키려 했다. 전교조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그들은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전교조를 제대로 손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거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전교조 조합원에 대해 학부모들의 유무형의 압력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테고, 이로 인해 해당 전교조 조합원이 부담을 느끼고 위축될 것은 물론, 전교조 비조합원들에게는 '넌 전교조 조합원 꿈도 꾸지 마'라는 일종의 경고도 되리라 믿을 것이다.

둘째, 그들은 아직 자신들에게 완전히 장악되지 않은 사법부를 손보려 했다. 이는 정두언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면서 "조전혁 의원의 조폭판결에 대한 공동대처는 어설픈 수구 좌파판사의 무모한 도발에 대한 결연한 대응행위"라고 밝힌 것처럼 그들 스스로도 거리낌없이 내뱉은 바 있다.

정두언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면서 혼페이지에 남긴 글


의회를 장악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떼거지로 불법을 저지르면 사법부도 움츠러들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루 3000만원?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봐라'라는 말 그대로 조폭스러운 짓으로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했던 것이다.

전교조와 법원을 타격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굳이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까지 그들이 얻고자 했던 직접적인 기대였다. 물론 이밖에 부수적으로는 다가 오는 6.2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에서 '반(反) 전교조' 성향이 강한 이른바 보수표를 결집시켜 한나라당에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려는 의도 또한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는 분석이랄 것도 없고,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공개한 한나라당 의원들(한겨레 5월1일자에서 인용)


그런데 과연 이들은 자신들이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기대했을 것을 능히 충족시킬 수 있을까? 답은 '노'다. 아니 얻고자 했던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함은 물론 잃어버릴 것이 너무나 많은 자충수다.

1.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원 판결을 무시하면서까지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덕에 자신들이 얼마나 불법무도한 집단인지, 떼법을 일삼는 꼴통들인지 유감없이 저들 스스로 확인시켰다. 전교조와 법원에 대한 불신보다는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훨씬 커진 것이다.

2.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교조를 위축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저들 스스로 전교조에게 큰 도움을 줬다.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의 주장대로라면 전교조 조합원의 숫자는 매년 줄어들었다.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조합비가 적어진다는 것은 재정적 압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전교조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일단 조전혁 의원만 한방에 1억2000만원이라는 돈을 전교조에 '쾌척'한 셈이 됐다. 여기에 전교조가 조전혁 의원은 물론 함께 명단을 공개한 동아일보와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할 예정이니, 전교조가 이기게 된다면 전교조는 로또나 다름없는 재정적 후원을 얻게 된다.

전교조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면서 정작 전교조 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해줄 스포터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3.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뻘짓으로 사법부를 확실히 돌려세웠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여당과 사법부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되어 왔는데, 이번에 법원판결을 무시할뿐더러 나아가 아예 뒤집어 엎자고 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양심적인 판사와 중도적 성향의 판사들까지 완전히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4. 개인적으로 가장 큰 패착으로 여기는 부분인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선거를 앞두고 너무 멍청한 짓을 했다. 현재 전교조 조합원은 약 7만여명이다. 적지 않은 숫자다. 물론 이 가운데는 열성적으로 전교조 활동을 하는 선생님 외에 그저 조합원 신분만 유지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번에 7만명 모두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나아가 '7만명+α'까지 반한나라당 세력으로 만들어버렸다. 전교조 조합원을 남편이나, 아내, 혹은 부모, 자식 그리고 가까운 친지, 친구로 둔 사람들이 이번 한나라당 의원들의 명단 공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기 가족 또는 친척 친구의 이름을 인터넷에 '어느 학교의 무슨 과목을 가르치는 누구'로 띄워버린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과연 그들이 그 행동에 박수를 보낼까? 즉, 적어도 '7만명×2' 이상 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했고, 어떻게든 심판하고자 할 것이다. 그 숫자가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 집단이 자신의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방법 중에 흔히 사용되는 게 바로 '분리전술'이다. 2008년 촛불시위를 떠올려본다면 광우병대책위 같은 주도세력과 일반시민으로 나눠 광우병대책위를 때려잡는다든지 등 자신의 반대세력을 갈라놓고, 이간질시켜 결국은 조용히 시키는 것이다.

전교조에 대해서도 보통 그래왔다. 이른바 전교조 지도부, 즉 위원장 이하 집행부 등 간부와 일반 평조합원들을 구분해 조중동 등은 끊임없이 전교조 지도부가 구시대적 이념다툼에 사로잡혀 있다느니, 맹목적이라느니 공격했다. 물론 전교조 자체에 대한 마녀사냥도 끊이질 않았지만, 전교조 이름만 걸고 칼을 휘두를 때는 당장 그것이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평조합원들에게 체감되지 않는 것이어서 '나의 일'로 여기지 않아도 그만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번에 그 모두를 아예 명단을 만들어 마녀사냥에 나섰다. 전교조를 약화시키긴커녕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전교조의 결속력이 이전과는 비할 데 없이 강력해졌을 것이다.

"지아비의 도리가 아니다"며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내리겠다고 한 조전혁


그래서 나는 이번에 명단을 공개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멍청한 뻘짓이 고맙고 반갑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4일만에 꼬리를 내려버린 조전혁 의원의 결정이 아쉽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걸듯 호들갑을 떨더니 "아내를 더 이상 공포감에 시달리게 하는 것은 국회의원을 떠나 지아비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며 아내 핑계를 대다니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또 안쓰럽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다. 적어도 한 열흘은 버틸 줄 알았더니...

어쨌든 자신들이 어떤 집단인지를 스스로 까발려준 한나라당, '땡큐'다.

덧) 전교조 태동기 군사정권은 당시 문교부를 통해 일선 학교에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 공문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교사가 전교조 교사였다고 한다. 해당되지 않는 전교조 교사도 물론 있겠지만, 대다수 전교조 교사는 아직도 아래에 해당되는 분들이라 믿는다. 그래서 명단이 공개되어도 전교조 교사들은 거리낄 것이 없다!

1.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1.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1. (특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1. 신문반, 민속반 등 학생들과 대화가 잘 되는 CA반을 이끄는 교사
1.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1.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1. 탈춤, 민요, 노래,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
1. 생활한복을 입고 풍물패를 조직하는 교사
1.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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