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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의 비극을 웃음거리삼는 미국 국방장관

뉴스후비기

by hangil 2010. 7.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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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MBC 뉴스데스크를 보면서 대단히 모욕적인 기분을 느꼈다.
내가 직접 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엄청난 모욕을 당한 느낌, 자존심과 자존감을 짓뭉개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분노였다.

오늘 아침부터 신문들이 떠들고 인터넷에서도 요란스럽게 소개됐듯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외교/국방장관과 함께 이른바 '2+2 회의'를 가졌다. 아마도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한국 이명박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만방을 과시하려는 모양이다. 좋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들이 한국에 와 한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고, 그걸 널리 알리겠다는데 거기다 감놔라, 배놔라 할 처지는 못된다. 내가 꼭지가 확 돈 것은 '한미동맹'을 위해, 한국이라는 '우방'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한국땅에 왔다는 저들이 정작 하는 짓을 보고서다.

7월 21일 MBC 뉴스데스크 3번째 꼭지


오늘 뉴스데스크는 3번째 꼭지에서 "한미외교 국방장관 4명은 사상 처음으로 비무장 지대를 함께 방문했다"며 그들의 DMZ 방문 모습, 판문점 방문 모습 등을 소개했다. MBC는 그들의 이런 행보를 "북한에 대해 굳건한 한미동맹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과시였다"고 해석했다. 그래 그것도 좋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미군이 관리하는 비무장지대 초소를 방문한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 비무장지대에 있는 남측 대성동 마을과 북측 기정동 마을 사이의 이른바 '깃대 높이기 경쟁'을 언급하며 안내를 맡은 미군에게 "지금도 양측이 깃발을 더 높이 달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안내한 미군은 "네, 그렇습니다"는 답을 했고, 그 대답을 들은 게이츠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마치 경멸하고, 조소하듯 "음흐흐흐"라는 소리까지 내며 웃음을 터트린다. 게이츠의 웃음소리를 들어보면 알겠지만(꼭 기사를 확인해보시라!), 듣기가 대단히 민망하고 귀를 닫고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웃음소리였다.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 재밌어 죽겠다는 듯 '킥킥'대는 그런 웃음 있지 않은가. 대단히 우월한 위치에서 아래를 쳐다보며 경멸을 담아 내는 그런 비웃음소리.

남북의 깃대높이기 경쟁을 듣고 웃음짓는 미국 국방,국무장관들


나는 게이츠의 웃음소리를 그렇게 들었다. 아니 그렇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게이츠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그런 웃음을 유발할 사안이 아니다.

우방이랍시고 찾아온 한국이 겪고 있는 분단의 비극 중 하나의 상징이 바로 대성동과 기정동 사이의 깃대 높이기, 깃발 키우기 경쟁이었다. 남북 분단과 체제 경쟁의 한 단면을 보여준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국방장관은 그런 남북의 상황이 웃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우스웠나보다. 그런 게이츠를 보고 옆에서 함께 웃고 있던 힐러리 역시 마찬가지다.

뭐가 그렇게 우습단 말인가. 남북이 분단되어 깃대 높이기 경쟁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해보였다는건가, 그래서 동맹을 과시하러와서 한심한 남북분단의 현실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단 말인가.

사실은 '지금도 깃발을 더 높이 달려고 애를 쓰고 있냐'는 게이츠의 질문도 어처구니없고, '그렇다'는 미군이 답변도 어처구니없다. 비록 깃대 높이기 경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954년 북한이 기정동에 30여m 깃대를 세우면서 시작된 이 경쟁은 55년 남측이 48m 깃대를 세우고, 다시 57년 북측이 80m 깃대를 세우고, 60년 남측이 99.8m 깃대를 세우고 64년 북측이 다시 158m 깃대를 세우는 등 14년 동안 벌어진 이후로는 사실 경쟁은 중단됐다. (월간중앙 2002년 10월호 참조)

왼쪽은 높이 100여m의 대성동 태극기 깃대, 오른쪽은 높이 160여m의 기정동 인공기 깃대. 사진출처-통일뉴스


'지금도 깃대 경쟁을 하냐'는 질문도 터무니없고, 그런 미국 국방장관에게 '그렇다'고 답한 미군 또한 터무니없다. 거기서부터 유발된 게이츠의 비웃음소리는 더 터무니없는 것이다.

미국 국방장관과 미국 국무장관이 동시에 한국에 오고, 그와 동시에 부산에는 한미합동훈련을 위해 미해군 최대의 핵항공모항이라는 조지 워싱턴호가 들어왔다.

도대체 미국이란 한국에 무엇인가. 2010년, 지금에까지 미국은 도대체 한반도에 어떤 존재인가!

비무장지대를 둘러보고 판문점에서 기념사진 촬영하는 미국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한미합동훈련을 위해 부산에 들어온 미군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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