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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납치로 진면목 드러낸 우리 언론의 한심함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7. 7. 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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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 사건은 사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고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몇 가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


일단,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얻고 있는지 확실히 드러났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최종협상 시한을 계속 연장하는 탈레반을 두고, ‘왜 약속대로 시간 지났는데 사람들을 안죽였냐?’며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탈레반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지경이면 말 다 한 것.


과연 납치 당한 사람들이 교회 관계자가 아니었더라면, 가지 말란 곳에 억지로 간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식으로까지의 비인간적인 비난이 일 수 있을까?


만약 지난 해 한국 기독교 단체 사람들 1000여명이 아프간에서 대규모 선교집회를 벌이겠다고 했다가, 아프간 정부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았던 그런 일이 없었다면, 주변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명동 한 복판에서, 서울역 곳곳에서, 지하철 구석구석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팻말을 들고 아무 때나 나타나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지 않았다면,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이렇게나 천편일률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을게다.


사람들의 반응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무데나 선교하러 다니고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기독교 사람들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사건은 우리 언론의 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마찬가지지만, 방송을 가지고 한 번 이야기해자.


7월 25일... 이날은 하루종일 납치된 사람들의 거취를 두고, 협상내용을 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엇갈린 소식들이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그 소식들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타고, 뉴스특보를 타고 네티즌들과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그 출처는 다름 아닌 전 세계 유수의 외신들.


현재 방송사들은 특보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정규방송을 하다가도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자막으로 그 내용을 알리고 정규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뉴스특보를 방송한다.


7월 25일 저녁, 먼저 8명의 사람이 석방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벌써 미군에게로 인도되어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란 뉴스까지 전해졌다.


그 직후 한 사람이 피살됐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8명 석방, 1명 피살’이라는 제목을 달고..., 같은 시간 다른 방송사 뉴스에서는 ‘탈레반 22명 그대로 억류’라는 소식을 전한다. 어 뭐야, 하고 한참을 관련 소식을 듣다, 또 다른 채널로 돌리자, 다시 ‘8명 석방, 7명 여자, 1명 남자’라는 보다 구체화된 석방 소식까지 등장했다. 피살됐다는 1명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모든 소식들은, AP, AFP, 교도통신, CNN, 알자지라 등 외국 통신사 등 언론들을 통해 MBC, KBS, SBS, YTN, MBN 등을 거쳐 시청자에게로 전해졌다. 인질들이 처음 납치된 7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이 모습은 변함이 없다.


그저 KBS 한 곳만 어제 탈레반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아마디와 전화통화를 했다며 그의 육성과, 사람이 한 명 죽었다는 소식을 직접 전했을 뿐이다.


이 한 건의 소식 외에 방송사들의 보도는 전하는 내용에서부터 갈팡지팡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까지 천편일률이었다.


외교통상부 한 번 연결하고, 국제부 한 번 연결하고, 청와대 소식 한 번 전했다가, 한민족복지재단의 가족들 모습 잠깐 비춰주고, 미국 워싱턴으로도 한 번 가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 반복에 반복을 연속했다.


아프간에서 가장 가깝다 싶은 곳을 연결한 게 겨우 ‘두바이’다. 바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다는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현지 소식을 전하는 기자 한 명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아프간이 ‘여행위험국’이었다, 이제 ‘여행금지국’이 되어서???


그러면서 현지 교민과 외교부 관계자들과의 전화통화는 잘 한다....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23명이라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졌고, 국제적으로 가장 큰 이슈가 되었지만, 한국의 언론들은 자국민과 관련한 소식을 주동적으로 전하지 못하고 오로지 외신에게 의존하고 있다. 바로 우리 언론의 오래된 관행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해서 전쟁을 일으켰을 때도, 다른 외국의 유수 언론사 기자들이 생명을 걸고 바그다드에서 총탄과 미사일이 쏟아지는 한가운데서 이라크 현지 소식을 전할 때, 우리 언론사 기자들은 미군의 ‘임베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미군이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꼭 그 선에 맞춰 미국의 시각에서 이라크 전쟁을 다뤘다.


2005년 북한 용천역에서 대형 폭발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언론은 같은 민족에게 발생한 불행한 사건임에도, 외신을 따라가며 ‘반 김정일 세력 어쩌고저쩌고’ 등 확인미상의 온갖 잡다한 설을 쏟아냈다.


얼마전 조승희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사건을 일으켰을 때도 우리 언론은 외신을 쫓아 ‘중국계 미국인’이었니, ‘여자친구를 죽였니’라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하는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심지어 지난 해 연합뉴스를 비롯해 조선, 동아 등 국내 ‘최정상 일간지’ 찌라시들은 미국의 칼린 전 국무부 관리가 가상으로 쓴 글을 가지고 사실처럼 보도해 ‘최악의 오보’ 행렬에 줄줄이 엮여진 적도 있었다. 모두 외국인, 특히 미국인이 보낸 소식이라고 하면 확인과정은 생략한 채 우선 내고보자는 외신추종주의와 속보경쟁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이번 아프간에서 발생한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 사건을 보면서, 그리고 시시각각 혼란스럽게 쏟아져나오는 외신을 보면서, ‘왜 우리는 우리 언론사를 출처로 해서 협상과정을, 인질들의 소식을 접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은 하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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