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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에 없는 것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17. 8. 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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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은 깔끔한 프로그램이다. 따뜻하기도 하다. 너저분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다. 보는 동안 기분이 좋아지고, 보고 나면 여운이 남는다. 한편의 동화를 보고난 뒤의 느낌과 비슷하달까.


'효리네 민박'이 출연자들과 출연자들의 일상을 소재로 풀어내는 재미의 성격은 앞선 다른 예능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출연자들 사이의 따뜻한 정을 베이스로 하여 그 관계에서 형성되는 잔잔한 에피스드를 다루는 방식도 그렇고, 이국적이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며 일상탈출의 상상을 펼치도록 만드는 것 등은 '윤식당', '꽃할배', '꽃누나', '삼시세끼'를 비롯한 tvN의 숱한 예능과 유사한 아류프로그램에서 흔하게 봐왔다.


그 프로그램들도 좋았으되, '효리네 민박'은 좀 더 다른 느낌이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긴 하나 훨씬 개운한 느낌을 준다. 잡내가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재미다. 매주 한 번씩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그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효리네 민박'에는 다른 예능에 흔한 어떤 것들이 없기때문이다.




'효리네 민박'에는 노골적인 간접광고가 없다. 

좀 더 과장하자면 간접광고가 있는지 없는지 헷갈릴 정도다. 한 번 떠올려보시라. '효리네 민박'에서 본 간접광고 중에 기억에 남는 브랜드나 제품이 있는지.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타고 다니는 볼보 자동차 정도가 떠오를뿐 '어떤 간접광고가 있었지' 생각해봐도 뚜렷하게 떠오르는 건 없다. 


그 자동차조차도 튀지 않는다. 간혹 엠블럼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지만 일부러 부각시키거나 자동차의 기능을 강조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프로그램에선 기를 쓰고 자동차를 타고 다닐 것 같은 순간에도 '효리네 민박'은 택시를 이용하거나, 렌트카를 이용하거나, 걸음걸이 대신하거나, 아예 지도로 동선을 대신해버린다.


몇 년 사이 이른바 '리얼예능'의 단골 소품이 된 탄산수와 캔커피, 생수도 '효리네 민박'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억지스럽게 시도때도 없이 탄산수를 화면에 노출시키고, 한참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캔커피 한 잔 마시는 모습을 분위기있게 잡아내는 따위의 작위적 설정이 '효리네 민박'에는 없다. 스마트폰의 어떤 새로운 기능을 소개하며 난데없는 사진을 찍거나, 어떤 어플을 꼼꼼하게 소개하는 장면도 없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울지 모르겠다. JTBC 광고팀 입장에서는 애가 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간접광고 홍수에 시달려온 시청자 입장에서는 반갑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를 만난 것처럼.


'효리네 민박'의 화면에는 피디와 작가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1박2일'부터였을거다. 예능프로 화면에 제작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그전부터도 나오긴 했다.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에 손모양 막대기를 들거나 '무한도전'에서 김태호 PD의 목소리 정도가 나오던 것이, '1박2일'에서 나영석 PD가 게임의 당사자로 등장하면서부터, 예능프로에 피디와 작가가 심심찮게 등장했고, 곧 트렌드가 되었다. 물론 이들의 등장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 자체가 '리얼'을 포장한 이들 프로그램이 사실은 '설정'임을 드러냈다. 


'효리네 민박'에는 피디와 작가들이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프로그램이 정해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리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리얼의 느낌만큼은 생생하다. 아니 '리얼'이란 말보다 '자연스럽다'고 하는 게 더 낫겠다. '효리네 민박'은 인위적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들이 나오지 않는 대신, '효리네 민박'집 구석구석, 사방팔방에 위장커버로 자신을 숨긴 아마도 수십대의 카메라가 연신 돌아가며 순간순간을 포착해 이어간다.


'효리네 민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을 주는 또 하나를 꼽자면, 다른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출연자 인터뷰'가 없다는 점이다. 

'리얼예능'을 내건 많은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출연자의 감정을 함께 느끼도록 강요하거나, 어떤 상황을 부각하면서 제작진이 의도한 상황으로 시청자를 이끈다.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느낌을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억지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다. 


'효리네 민박'은 모든 이야기를 출연자와 출연자, 민박 주인네와 손님들의 대화로 풀어낸다. 민박집에 놀러온 3남매의 사연은 굳이 그들의 입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효리나 상순, 지은과의 대화를 통해 소개된다. 아니 '효리네 민박'은 순간순간을 포착하고 충실할뿐, 굳이 어떤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른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익숙해져 있는 많은 것들을 보지 않는 게 이렇게 말끔한 느낌일지는 몰랐다. 아름답고 깨끗한 제주도, 자연스럽고 유쾌발랄한 이효리-이상순 부부, 그들 부부의 사랑스러운 개와 고양이, 가수 아이유를 벗어던진 이지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것 같은 민박집 손님들. 이 모든 것을 담아서 엮어내기에 '효리네 민박'의 방식이 탁월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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