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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망치는 '대포동 예술극단', 시대착오적이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8. 9. 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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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이면 거의 채널을 고정시켜놓을 정도로 즐겨보는 KBS 2TV의 <개그콘서트>..어제도 언제나처럼 개콘을 봤다.

'닥터피쉬'가 마지막 방송이어서 아쉬움을 가졌고, '달인'이 짧은 에피소드로 금방 끝나 또 아쉬움을 가졌는데, 마침 새로운 코너가 나왔다. 이름하야 '대포동 예술극단'.

북한이 발사했다는 미사일 이름을 연상케하는 코너 이름 자체가 갸우뚱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개콘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기대를 가지고 봤다.
결과는? 대략난감, 깊은 유감, 실망 그 자체 였다.

한 코너에 무려 11명이 출연하고, 한 코너 안에서만 또 다시 세 꼭지를 다루는 등 시간과 인원이 '봉숭아 학당'과 비견될 정도로 집중된 코너 였음에도 '눈과 귀를 버렸다' 싶을 정도로 실망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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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꼭 80년대 방송되던 KBS의 <지금 평양에선>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묘사한 것이 분명한 박휘순이 인민군복 차림의 측근 둘을 대동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지금 평양에선>의 판박이로 볼 수밖에 없다.

'대포동 예술극단'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서나 나왔음직한 시대착오적인 북에 대한 편견을 21세기 대한민국 공영방송에 다시 끄집어냈던 것이다. 남한 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는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것만이 최선이고, 그렇지 않은 인민에 대해서는 숙청이나 처벌이 무자비하게 이뤄지더라도 당연한 그런 북한 사회.

반공이데올로기에 철저했던 옛 교과서에서나 보던, <지금 평양에선>이나 <똘이장군> 류의 '반공'과 '반북'이 최우선이었던 철지난 프로그램... 이제는 기억속에서조차 희미해져버린 그런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북한 사회에 대한 묘사가 21세기 공영방송 KBS에서 부활한 것이다.

이 코너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김정일 국방위원장임이 분명한)와 그의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의 '인민예술단'이 몇 가지 공연을 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첫번째 '북조선 사투리'는 예전 박준형과 옥종철, 김시덕이 나와 큰 인기를 모았던 '생활사투리'의 '북한 사투리' 버전이었는데, '생활사투리'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오간데 없이 북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비하만을 담고 있었다.

'청혼을 할 때 쓰는 표현'이라며 함경도 버전은 '돈은 좀 모아놨응 둥'이라고 하고, 평안도 버전은 심지어 '씻고 오라우'라고 했다.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지는 그 근거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북한 사회가 '사회주의이면서도 돈을 동경하는 사회', '북한 여성은 더럽다'는 인식을 가지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

'실수를 연발하는 동무를 꾸중할 때 쓰는 표현', 즉 '개념없음을 질타할 때 쓰는 표현이라며 평안도 버전을 '묻으라우'라고 했고, '정말 개념이 없다'는 '깊이 묻으라우', '총알 장전 하라우' 식으로 표현했다. 이 역시 북한 사회가 비인간적인 처벌과 숙청이 일상사로 벌어지는 사회로 전제하지 않는 이상 나오기 힘든 표현이다.

공연을 잘했다며 "아새끼들 소원 하나 말해보라우"라고 인민군복을 입은 최고지도자의 측근이 말하자, '남쪽으로 가고 싶다'고 소원을 말하고, 그 즉시 '총알 장전 하라우'라고 방금 했던 '개그'를 되새김한 것은 웃음을 유발하기는커녕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두번째 '고고 인민 속으로'는 박지선과 안영미가 나와 예전 안영미가 강유미와 함께 했던 '고고 예술 속으로'를 패러디한 것이었는데, '강유미는 어디로 갔냐'며 '군대로 차출됐다'고 하거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안영미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자 "자본주의의 승냥이같은 에미나이"라고 퍼붓는 대목은 그야말로 80년대 단체관람하던 반공영화의 그것과 똑같았다.

안영미가 끌려가는 모습을 본 박지선은 꿈이 "대장 동무의 혁명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대장 동무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습니다"고 말하는 것과 그런 박지선을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라우"라고 지시하는 인민군의 모습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북의 체제가 남한 사회보다 훨씬 경직되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물론 무수히 남과 북을 오갔던 많은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어떤 나라>, <천리마 축구단> 등 외국인이 북의 실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통해 북도 사람이 사는 곳이요, 낭만도 있고 예술도 있고 사랑도 있는 곳임이 널리 알려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의 피를 흘려야 하고 쓸데없는 국력을 낭비해야 하는 체제 경쟁을 겪은 뒤 이제는 화해와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해나가야 함을 교훈으로 얻었다.

하지만 6.15, 10.4 선언을 휴지장 취급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 시점, KBS에서 그것도 대중적 인기를 크게 얻고 있는 개그프로그램에서 시대착오적인 내용을 버젓이 방송하는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더구나 이명박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정연주 KBS 사장이 초법적으로 쫓겨나간 뒤 '낙하산' 혹은 '관제사장'이라는 이병순 씨가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개그콘서트>에서마저 이런 식의 '반북 이데올로기'로 뒤덮인 코너가 주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나는 '대포동 예술극단'의 아이디어가 '육봉달'과 '고시생'을 연기했던 박휘순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 '에드립 브라더스'의 박성호, '고고 예술속으로'의 안영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믿을 수도 없다. 박지선? 한민관? '대포동 예술극단'에 출연하는 모든 연기자들이 그 동안 했던 코미디를 돌이켜보자면 너무나도 믿기 힘들 코너다. 아니 개콘에서 이런 코너를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의외다.

도대체 무슨 힘이 작용해 개콘마저 망치려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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