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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1박2일' 폐지하겠다는건가?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9. 12. 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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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내고,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KBS 사장 임명장을 받은 김인규 KBS 사장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민영 방송사들이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KBS에서도 '시청률'을 이유로 똑같이 만들 필요가 없다""그런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대신 다른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공영방송 KBS만의 프로그램을 신규로 편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대규모 프로그램 개편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KBS 사장 임명장을 받고 난 뒤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밝힌 'KBS 개혁 구상'이 이렇다. 한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는 KBS가 또 어떤 격랑에 휘말리게 될지 우려스럽다. 이미 KBS는 정연주 사장이 이명박 정권의 불법에 의해 강제로 쫓겨난 뒤 이병순씨가 들어서고 망가질만큼 망가졌다. 언론의 기본이라 할 권력에 대한 비판 정신이 살아있던 프로그램은 이미 씨가 말랐다. 프로그램뿐 아니라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 사회의식을 머릿 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 연예인조차 KBS에서 쫓겨날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나보다.

2009년 12월 7일 조선일보


'시청률을 이유로 다른 민영 방송사들이 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똑같이 만드는 KBS의 프로그램'은 과연 뭘까?

뭐니뭐니해도 대표적인 건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이다.

현재 KBS에서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를 보자.

월화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 수목드라마 <아이리스>, 주말드라마 <수상한삼형제>·<열혈장사꾼>, 일일드라마 <다함께 차차차>, 아침드라마 <다 줄거야>.


이 가운데 과연 시청률을 이유로 만들어지지 않는 드라마는 무엇일까? "다른 방송에서 볼 수 없는 KBS만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는 무엇이 있을까? 과연 지금 방송되는 드라마 가운데 공영방송 KBS만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드라마가 있기는 한 것일까?

<TV문학관> 정도의 드라마는 KBS 만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병순 이후 KBS에서는 더 이상 제작되지 않고 있다. 광고도 붙지 않는 KBS1에 편성됐던 <불멸의 이순신> 같은 대하드라마 정도라면 또 공영방송 KBS만이 제작할 수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지만, KBS에서는 대하드라마도 지금은 제작되지 않고 있다. 이병순 KBS에서 '흑자경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단막극 '드라마시티'도 KBS의 공영성을 살린 드라마였지만, 역시 지금은 제작되지 않는다.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면 나는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과연 그런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KBS에서 <아이리스>같은 드라마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반대이긴 하다.
김인규 사장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김인규 사장이 취임 뒤 첫 현장을 방문한 자리는 KBS 일일드라마 <다함께 차차차>의 방송 100회 자축연 자리였다. 마침 이 즈음 <다함께 차차차>가 시청률 30%를 넘었는데, 이와 관련해 김인규 사장은 "방송국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9시 뉴스의 시청률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함께 차차차'의 인기가 견인차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드라마 시청률을 '뉴스 시청률의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과연 보도국 기자 출신 다운 말이며, '다른 방송사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KBS에서 시청률을 이유로 만들 필요가 없다. 폐지하겠다'는 말을 할만 하다.

이 자리에서 김인규 사장은 "일일 드라마 중 <사랑이 뭐길래>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히트를 쳤다. '다함께 차차차'는 그에 버금가는 히트를 기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는데, 역시 새 KBS 사장께서는 시청률에 별다른 욕심도 관심도 없으신 분인가보다.

<사랑이 뭐길래>는 MBC의 주말드라마로 평균 시청률은 가장 높았으나(59.6%),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KBS의 <첫사랑>(65.8%)이였다. 김인규 사장이 언급한 '일일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은 MBC의 <보고 또 보고>(57.3%)였고, 평균시청률이 가장 높은 드라마는 KBS의 <정때문에>였다.


오락프로그램으로 가면 김인규의 KBS가 무엇을 하려는지 더 궁금해진다.

<1박2일>, <개그콘서트>, <미수다>, <스타골든벨>, <상상플러스>, <샴페인>, <연예가중계>, <뮤직뱅크>, <천하무적 야구단>, <청춘불패>, <출발드림팀>, <해피투게더>.......

이 가운데 '시청률을 이유로 다른 민영방송사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프로그램'은 도대체 뭐가 있을까?
리얼버라이어티? 개그프로? 토크쇼? 음악방송?????


지금 KBS 프로그램 중 다른 방송사와 차별적인 KBS 만의 오락프로그램이라 할 만한 건 <전국노래자랑>, <스펀지>, <콘서트 7080>, <위기탈출 넘버원> 정도??
그럼 이 정도 외에는 다 폐지하겠다는 말씀?

KBS 사장께서 '더 이상 시청률에 매달리지 않겠다'며 '공영방송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을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자체는 나쁜 말이 아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에서 오락성이 거세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시청률을 이유로 다른 방송사와 똑같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폐지하겠다'는 말은 결국 KBS에서 오락성을 거세하겠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무료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상파방송, 그 중에서도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국민들에게 오락을 제공해야 할 책임도 있다. TV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시청자에게 여가를 제공하는 것. 공영방송의 역할에도 당연히 그것이 포함된다.

다른 상업방송들과 마찬가지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신변잡기, 막말, 선정성, 폭력성 등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개선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니? 이게 KBS 공채1기로 들어와 방송사에서 30년을 지냈다는 자칭 방송전문가의 말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뭐 사장이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이분에게 과연 시청자가 안중에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할테면 하시라. KBS가 '국민의 방송'이 될지 '국민이 보지 않는 방송'이 될지 한 번 지켜보자. '국민이 보지 않는 방송'이 된다면 굳이 수신료를 낼 필요도 없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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